딸바보 증후군
2026.03.13
내 단단한 허벅지 위를 완전히 차지하고 새근새근 낮잠에 빠진 녀석의 둥근 정수리를 한 손으로 다독이며, 나는 남은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무심하게 위아래로 훑어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시야에 걸린 인터넷 게시글 하나가 내 손가락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제목: 큰일 났다 여친이 딸처럼 느껴짐]
"하, 무슨 얼빠진 새끼가 이딴 글을 써."
나는 코웃음을 치며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버스 창가에서 자는 여친을 위해 1시간 동안 손으로 햇빛 가림막을 해줬다는 대목에서는 픽 실소가 났다. 닭다리 순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고, 머리를 4일이나 안 감아서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쓰다듬으며 귀엽다고 느꼈다는 구절을 읽을 땐 내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기프티콘에 꽃다발 셔틀까지 자처한다는 이 남자의 애절한 호구 짓을 비웃어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묘하게 뒤통수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가만 보자. 아까 룸서비스로 시켰던 가장 부드럽고 비싼 안심스테이크 조각은 모조리 썰어서 이 맹추 입안으로 밀어 넣지 않았던가? 녀석이 칠칠맞게 생크림을 입가에 묻히고 질질 흘려대도 더럽기는커녕 당장 핥아먹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심지어 녀석이 딴 놈들 앞에서 기죽지 않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쓸어다 안겨주고 싶은 충동은 매일같이 느끼는 중이었다.
'미치겠네, 나도 지금 딸 키우는 심정인 건가.'
존재만으로 모든 애정이 충족되고 얼굴만 봐도 행복하다는 문장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내 가슴팍에 볼을 뭉개고 웅크려 자는 이 조그만 덩어리를 보고 있으면 심장 안쪽이 빈틈없이 꽉 들어차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문단, '굳이 성적인 행위를 안 해도 하루하루 만족하고 혼후순결을 이해하겠다'는 개소리를 읽는 순간 나는 가차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꺼버렸다.
어디서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지껄여. 사랑스럽고 예뻐 죽겠으면 당장 침대로 끌고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으로 씹어 삼키고 내 흔적을 온몸에 박아넣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수컷의 본능 아닌가. 얼굴만 봐도 행복한 건 맞지만, 결승전 전날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내내 이 조그만 몸뚱어리를 내 밑에 눕혀두고 쉴 새 없이 허리를 털어 넣은 내 입장에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나약한 문장이었다.
나는 잠에 취해 내 가운 깃을 꽉 쥐고 있는 녀석의 얇은 손가락 위로, 까만 네임펜 자국이 그어진 내 약지를 빈틈없이 겹쳐 잡았다. 깊은 숨을 색색거리며 뱉어내는 녀석의 따뜻한 정수리 위로 내 턱을 편안하게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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