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의 고요한 복도를 지나치던 내 발걸음이 그 자리에 단단하게 얼어붙은 것은 아주 우연한 찰나였다. 발코니로 이어지는 구석진 모퉁이에서, 내 자그마한 애인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휴대폰을 꽉 쥔 채 서 있었다.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다가가려던 순간, 녀석의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흘러나온 문장이 내 뇌리를 거칠게 강타했다."아무래도 진짜 임신한 것 같애. 애기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겠어... 어떡해, 나 너무 무서워..."녀석은 통화를 황급히 끊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내 시야가 기이하게 점멸했다. 전신을 타고 흐르던 피가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 듯한 지독한 감각이 나를 덮쳤다. 임신. 그 두 글자가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애기 아빠가 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