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xg3vE8Ie_E?si=hOQYvU9GNPWIYz-S
세단 조수석의 묵직한 문을 열어주자, 녀석은 내가 억지로 덮어씌운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자락을 야무지게 쥐고 푹신한 가죽 시트 위로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여 녀석의 허리춤에서 안전벨트 버클을 끌어당겨 채워주는 찰나, 조그만 입술 사이로 아주 조심스러운 물음이 흘러나왔다.
"차 타고 가면서 캘런 부모님 얘기해주시면 안 돼요?"
나를 올려다보는 맑은 청록색 눈동자가 얕게 흔들렸다. 행여나 내 상처를 건드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캘런이 불편하면 당연히 안 해주셔도 돼요..."
어깨를 한껏 움츠리며 황급히 덧붙이는 그 다정하고도 맹추 같은 핑계에, 나는 턱관절을 허물며 아주 느슨한 실소를 터뜨렸다. 내가 다섯 살 무렵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는 건 영국의 골수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내 앞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하는 완벽한 금기어였다. 누군가 값싼 동정심이라도 내비칠라치면 그 자리에서 주둥이를 다물게 만들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내 단단한 팔뚝을 하얀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쥐고 있는 이 조그만 여자에게만큼은 그 어떤 방어기제도 작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은 상처마저 끄집어내어 녀석의 따뜻한 체온으로 완벽하게 덮어버리고 싶은 묘한 충동마저 일었다.
"불편하긴. 네가 무슨 내 앞에서 살얼음판 걷는 사람처럼 눈치를 봐. 내가 고작 옛날이야기 하나 꺼낸다고 무너져 내릴 나약한 놈으로 보여?"
나는 녀석의 둥근 이마 위로 흩어진 보송한 금발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었다. 내 온기가 닿자 녀석은 안도한 듯 도톰한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늘어뜨리며, 얽어맨 내 손등 위로 제 따뜻한 뺨을 얕게 비비적거려 왔다.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사실 얼굴도 제대로 기억 안 나. 대신 우리 할머니가 아주 지독하고 호랑이 같은 분이셔서 부모님 빈자리가 느껴질 틈도 없이 날 훌륭한 짐승으로 키워주셨지. 그러니까 그렇게 울상 지을 필요 없어."
나는 녀석의 동그란 콧잔등 위로 가벼운 입맞춤을 내리누른 뒤, 상체를 빼내어 조수석 문을 닫았다. 차체 앞을 가로질러 운전석에 몸을 밀어 넣자마자, 나는 대시보드 중앙의 스타트 버튼을 눌러 묵직한 배기음을 깨웠다. 차창 밖으로 아일랜드 특유의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지만, 좁은 차 안은 녀석이 뿜어내는 달콤한 바닐라 향기로 한없이 포근했다.
"부모님 산소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서 내 꼬마 시절 흑역사나 실컷 털어줄 테니까. 대신 내 조수석 전속 디제이님, 분위기에 딱 맞는 달콤한 노래 하나만 틀어보지 그래?"
"네에, 캘런. 알겠어요. 대신 언제든지 캘런이 그만 얘기하고 싶어진다면 멈추셔도 괜찮아요. 그땐 제 얘기를 해드리면 되니까요."
나를 똑바로 마주 보는 맑은 청록색 눈동자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예쁘게 접혔다. 그 다정하고 투명한 위로가 귓바퀴를 통과해, 굳게 닫혀 있던 내 가슴 안쪽의 가장 연약한 곳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내 알량한 자존심을 지켜주겠다며 슬쩍 대화의 퇴로를 열어주는 이 조그만 맹추를 대체 어쩌면 좋을까. 평생 타인에게 약점을 내어주지 않으려 날 선 가시를 세우고 살아온 내 영토 한가운데로, 아무런 조건 없이 걸어 들어와 방패를 자처하는 사람은 오직 이 녀석 하나뿐이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매만지자, 블루투스가 연결된 차량의 하이엔드 스피커를 통해 아주 달콤하고 서정적인 통기타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러브 스토리'. 로맨스 소설을 달고 사는 녀석다운 지나치게 직관적이고 동화 같은 멜로디였다. 평소의 나라면 닭살이 돋는다며 당장 라디오 전원을 꺼버렸을 선곡이었지만, 조수석에 앉아 음악에 맞춰 입술을 달싹이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 좁은 차 안이 진짜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완벽하게 느껴졌다. 나는 기어이 턱관절을 허물며 시원한 실소를 터뜨렸다. 스티어링 휠을 쥐지 않은 오른손을 뻗어, 녀석의 둥근 뒤통수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다정하게 감싸 안았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금발이 얽혀 드는 감각이 핏속을 기분 좋게 덥혀왔다.
"내 과거사 풀다가 혼자 청승맞게 입이라도 다물까 봐 아주 철저하게 대비를 해주시네. 걱정 마. 내가 중간에 말을 멈추면 네가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네 얘기를 속삭여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핑계를 대서라도 중간에 입을 꾹 닫고 싶어지는데."
차체가 부드럽게 도로 위를 미끄러지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녀석은 내 체온을 향해 고개를 얕게 기울인 채로 노래의 리듬에 맞춰 작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게다가 아주 기가 막힌 선곡이야, 우리 전속 디제이님. 네가 이런 달달한 노래를 틀어버리면 이 오빠가 당장 백마 탄 로미오 역할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잖아. 일단 네 얄미운 친오빠 녀석이라는 가장 거대한 장애물 하나는 방금 가볍게 뛰어넘고 널 내 조수석에 모셨으니까, 이만하면 아주 훌륭한 서사지. 안 그래?"
아일랜드의 고풍스러운 풍경이 차창 밖으로 시원하게 스쳐 지나가고, 녀석 특유의 달큰한 바닐라 향기가 낭만적인 선율과 짙게 뒤엉켜 내 호흡기를 빈틈없이 장악하기 시작했다. 조그만 입술이 반주에 맞춰 아주 앙증맞게 달싹였다. 내가 덮어씌워 둔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목깃 위로 도톰한 아랫입술을 오물거리며, 녀석은 조수석에 파묻힌 채 팝송의 하이라이트 구간을 아주 부지런히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Romeo, take me somewhere we can be alone. I'll be waiting, all there's left to do is run. You'll be the prince and I'll be the princess. It's a love story, baby, just say, Yes."
아일랜드 특유의 둥근 억양이 섞인 부드러운 영어 발음이 좁은 차 안을 달콤하게 맴돌았다. 방금 전 내가 로미오 운운하며 던졌던 뻔뻔한 농담을 곧장 노랫말로 받아치는 그 기특하고 당돌한 센스라니. 나는 스티어링 휠을 쥔 손에 얕게 힘을 주며 기어이 터져 나오려는 유쾌한 실소를 턱관절 아래로 간신히 삼켜냈다.
"나보고 왕자를 하라고? 매주 피치 위에서 거구의 수비수들이랑 멱살 잡고 뒹구는 놈한테 동화 속 왕자님은 너무 나약하고 시시한 타이틀 같은데. 그래도 내 조수석을 꿰차고 있는 네가 그토록 얌전하고 예쁜 공주님이라면, 까짓것 그 닭살 돋는 역할쯤이야 기꺼이 맡아주지."
나는 기어를 변속하며, 비어 있는 오른손을 뻗어 내 단단한 허벅지 위에 놓인 녀석의 하얀 손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다정하게 덮어 쥐었다. 거친 지문 사이로 여린 손가락을 빈틈없이 얽어매자, 녀석은 얕은 호흡 그대로 내 체온을 향해 고개를 살며시 기울여 왔다.
"게다가 아주 대놓고 '예스'라고 대답하라고 조르기까지 하네. 단둘이 있을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가사도 기가 막히게 훌륭하고 말이야. 이미 네 얄미운 오빠 녀석이 눈에 불을 켜고 대기하는 그 집구석에서 널 훔쳐내 달아나고 있는 중이니까, 대답은 진작에 내 에스코트로 완벽하게 증명한 거 아니야?"
나는 맞잡은 녀석의 손등 위를 투박한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문질러주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흐린 구름 사이로 늦은 오전의 햇살이 쏟아져 내리며 고풍스러운 더블린의 외곽 도로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나의 약점을 털어놓을 일은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녀석이 뿜어내는 달콤한 바닐라 향기와 발랄한 멜로디를 듣고 있자니 굳게 닫혀 있던 내 오랜 과거의 문을 부수는 일쯤은 아주 우습고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속 페달을 여유롭게 밟으며 녀석을 향해 턱 끝을 살짝 치켜올렸다.
"이 낭만적인 배경음악이 다 끝나기 전에 내 더블린 꼬마 시절 얘기를 털어놓으면 아주 완벽한 동화 한 편이 완성될 것 같은데. 내가 진흙투성이 축구공 하나만 덜렁 들고 온 동네 벽돌 담벼락을 부수고 다니던 얘기부터 시작해 줄까?"
"저는 캘런 얘기라면 뭐든 좋으니까, 편하게 해주세요."
녀석이 다정하게 눈꼬리를 휘며 웃어 보였다. 아주 온화하고 투명한 미소가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평생 타인에게 약점을 내어주지 않으려 날 선 가시를 세우고 살아왔건만, 내 지난 시간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전부 끌어안겠다는 저 무방비하고 맹목적인 태도 앞에서는 그 알량한 방어기제조차 흔적 없이 부서지고 만다. 나는 스티어링 휠을 쥔 손에 부드럽게 힘을 주며, 맞잡고 있는 녀석의 여린 손등 위를 투박한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문질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서정적인 팝송의 선율이 차 안을 채우는 가운데, 나는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흐린 하늘을 잠시 응시하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내가 자란 동네는 아까 우리가 떠나온 그런 부촌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었어. 아주 작고 낡은 노동자 계층 골목이었지."
내 덤덤한 서두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향해 상체를 조금 더 기울여왔다. 맑은 청록색 눈동자는 내 얼굴에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이 타고 계시던 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는 사고가 났어. 사실 너무 어릴 때라 부모님 얼굴도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아. 그때부터 우리 할머니, 그 호랑이 같은 분 손에 컸지. 집에 남은 돈도 없고 가진 거라곤 낡은 축구공 하나뿐이어서, 매일 골목에 나가서 남의 집 벽돌 담벼락을 부수고 다닐 기세로 공만 차댔어."
아주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을 꺼내놓는 동안, 녀석은 아무런 말 없이 얽어맨 내 손가락을 제 두 손으로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얄팍한 동정이나 연민 따위가 아닌, 그저 내 상처를 온전히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다정한 체온이 거친 내 지문을 타고 고스란히 옮겨붙었다.
"동네 사람들이 아일랜드 촌놈 새끼 시끄럽다고 혀를 차도 난 기죽지 않고 바락바락 대들었거든. 골목에서 구르다 온몸에 멍이 들어서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가 내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고기를 듬뿍 넣은 따뜻한 스튜를 한가득 끓여주셨고."
과거의 어두운 이면을 털어놓고 있음에도, 녀석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덕분에 내 이성은 한없이 포근하고 평온했다. 나는 녀석의 말랑한 뺨을 향해 여유로운 시선을 던지며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치켜올렸다.
"동네 담벼락이나 맞추던 꼬맹이가 커서 유럽의 제왕 자리에 오르고, 내 차 조수석에 이렇게 예쁜 너를 앉혀두기까지 했으니 이 정도면 나름대로 동화 같은 결말 아닌가?"
내 거칠고 투박한 손등 위로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녀석이 맞잡고 있던 내 손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제 입술을 맞춘 것이다.
"동화 같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가요? 캘런이랑 저랑 같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거죠."
망설임 하나 없이 아주 곧고 투명하게 쏟아진 그 문장이 고막을 통과하는 순간, 스티어링 휠을 쥐고 있던 반대쪽 손에 나도 모르게 바짝 힘이 들어갔다. 차 안을 채우던 서정적인 팝송의 멜로디조차 지금 내 귓가에 맴도는 녀석의 다정한 목소리에 비하면 한없이 희미한 소음으로 전락해 버렸다. 과거의 낡고 볼품없던 시간마저 아무런 조건 없이 껴안아버리는 이 맹목적인 애정이라니. 평생을 날 선 가시를 세우고 방어적으로 살아왔던 내 영토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그 모든 경계심을 눈 녹듯 허물어버리는 이 조그만 맹추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녀석의 둥근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피부 부근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파동이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번져나갔다. 나는 기어이 턱관절을 허물며 아주 깊고 다정한 실소를 터뜨렸다.
"하,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데는 무슨 학위라도 있는 모양이네."
나는 운전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도, 녀석의 붉은 입술이 스치고 간 내 손의 방향을 비틀어 다시 녀석의 하얀 손을 단단하게 얽어매어 쥐었다. 거친 지문으로 녀석의 말랑한 손바닥 안쪽을 지그시 문지르며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아일랜드의 푸른 녹음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예쁜 짓을 해대면, 내가 운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목적지고 뭐고 지금 당장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 입술부터 온전히 삼켜버리고 싶어지는 걸, 내 엄청난 자제력으로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중인 거 알아?"
나는 도로의 완만한 코너를 매끄럽게 돌아나가며 녀석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목깃 위로 뺨을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인 채,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맑은 청록색 눈동자가 시야에 꽉 들어찼다. 오직 내 반응만을 살피며 내 체온에 기대어 있는 그 둥근 어깨가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웠다.
"네 말대로 시시한 동화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 내 조수석에 세상에서 제일 귀한 전리품을 앉혀두고 이렇게 손을 꽉 쥐고 달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완벽한 현실이니까."
나는 맞잡은 손을 다시 내 쪽으로 끌어당겨, 녀석의 여린 손가락 마디마디 위로 아주 짙고 느린 입맞춤을 덮어 내리며 여유롭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사랑해요, 캘런. 진심으로."
엑셀 위를 덮고 있던 내 발끝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졌다. 매끄럽게 회전하던 스티어링 휠을 거머쥔 왼손 아귀에 나도 모르게 바짝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차 안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던 서정적인 팝송의 멜로디조차 녀석의 그 투명하고 곧은 음성 앞에서는 순식간에 색채를 잃고 바스라져 버렸다.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목깃 너머로 나를 올곧게 마주 보는 맑은 청록색 눈동자. 그 안에는 어떠한 얄팍한 계산이나 핑계도 섞이지 않은 맹목적인 애정만이 가득 찰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턱관절을 뻐근하게 굳힌 채로 짧은 숨을 삼켜냈다. 평생을 그라운드 위에서 거친 수비수들과 뒹굴며 타인의 감정 따위는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살아온 내게, 이토록 아무런 방어막 없이 정면으로 쏟아지는 순수한 진심은 그 어떤 날카로운 태클보다도 치명적이고 압도적이었다.
"하, 진짜... 사람 명줄을 아주 제대로 쥐락펴락하네."
나는 속도를 부드럽게 줄이며 도로 가장자리의 한적한 갓길 쪽으로 세단을 천천히 미끄러뜨렸다. 묵직한 제동과 함께 차가 완전히 멈춰 서자마자, 나는 안전벨트에 매인 상체를 녀석 쪽으로 깊숙하게 기울였다. 맞잡고 있던 녀석의 얇은 손을 놓아주는 대신 비어 있는 반대쪽 손을 뻗어, 옅은 복숭아색으로 달아오른 녀석의 뺨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빈틈없이 감싸 쥐었다.
"운전 중인 남자한테 그렇게 무방비하고 예쁜 고백을 훅 던지면 어떡해. 목적지고 뭐고 당장 차를 세우고 네 입술부터 온전히 삼켜버리고 싶어지게 만들잖아."
내 짙은 투정에 녀석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도, 내 손길을 피하기는커녕 말랑한 뺨을 거친 내 지문 위로 더욱 깊숙이 기대어 왔다. 오직 내게만 허락된 그 무조건적인 신뢰에 흉곽 안쪽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게 조여들었다. 녀석 특유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훈훈한 히터 바람과 섞여 내 호흡기를 빈틈없이 장악했다.
"나도 사랑해.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맹목적으로."
나는 녀석의 둥근 콧잔등 위로 내 숨결을 바짝 밀어붙이며 엄지손가락으로 녀석의 도톰한 아랫입술 끝을 지그시 문질러 내렸다.
"제가 더어어 사랑할걸요?"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아주 당돌하게 받아치는 그 맹랑한 선전포고에, 나는 하마터면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앓는 소리를 낼 뻔했다. 명색이 유럽 무대를 평정하고 가장 거친 수비수들과 멱살을 잡으며 기싸움을 벌이는 스트라이커인데. 고작 조수석 시트에 푹 파묻혀서 나보다 자기가 더 사랑한다는 둥, 아주 얼토당토않은 승부욕을 불태우는 이 작은 여자에게 완벽하게 백기 투항을 해버린 기분이었다. 동그란 눈매를 반짝이며 내 커다란 손바닥 안에서 뺨을 비비적거리는 그 태평하고 온순한 꼴을 보고 있자니, 흉통이 저릿해질 정도로 뻐근한 열기가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하, 지금 나한테 승부를 거는 거야? 감히 캘런 오코너를 상대로 애정의 크기를 재보시겠다?"
나는 턱관절을 비스듬하게 치켜올리며 녀석의 말랑한 뺨을 쥔 손에 다정하고 묵직한 힘을 실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내 투박한 손가락 사이로 기분 좋게 짓눌려 올라왔다. 훈훈한 히터 바람을 타고 녀석 특유의 달큰한 바닐라 향기가 좁은 차 안을 꽉 채우며 내 이성을 온통 마비시키고 있었다.
"네 그 조그만 심장이 감당하는 감정 따위가, 내가 널 곁에 두려고 품고 있는 이 무식하고 지독한 집착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내 오만하고 다정한 타박에 녀석은 붉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맑은 청록색 눈동자를 끔벅였다. 지지 않겠다는 듯 도톰한 아랫입술을 얕게 비죽 내밀면서도, 뺨을 감싸 쥔 내 체온을 결코 피하지 않고 얌전히 받아내는 그 모순적인 태도가 시야를 빈틈없이 채웠다.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위로 꼼꼼하게 묶여 있는 실크 스카프의 끝자락이 녀석의 얕은 숨결을 따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의 가죽 시트 등받이 쪽으로 상체를 한껏 더 겹쳐 내리며 녀석의 둥근 이마와 콧잔등 위로 연달아 짙은 입맞춤을 쏟아부었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날 이길 수 있는 분야는 세상천지에 단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그런 맹추 같은 착각은 당장 접어두는 게 좋을걸."
나는 반박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비틀어, 녀석의 살짝 벌어진 부드러운 입술 사이를 내 입술로 단단하게 맞물려 틀어막았다. 맞물린 입술 틈새로 부드러운 호흡이 얽혀들었다. 내 짙은 입맞춤에 밀려난 녀석은 조수석 가죽 시트 등받이로 상체를 완전히 기댄 채 하얀 두 손으로 내 넓은 어깨를 부여잡았다. 내 혀끝이 녀석의 여린 점막을 부드럽게 훑고 지날 때마다 내 어깨를 감싸 안은 손가락에 강하게 힘이 들어가는 기척이 피부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히터의 따뜻한 공기 위로 녀석 특유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좁은 차 안을 빈틈없이 채우며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충분히 온기를 나눈 뒤에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뒤로 물렸다. 숨이 벅찬 듯 가파른 호흡을 토해내며 붉게 달아오른 뺨을 한 녀석이 맑은 청록색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묶어둔 옅은 실크 스카프 위로 녀석의 도톰한 아랫입술이 젖어있는 꼴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나는 턱관절을 비스듬히 치켜올렸다.
"나를 이겨먹겠다며 당당하게 선전포고를 하더니, 고작 입맞춤 한 번에 이렇게 무너져 내리면서 누가 누굴 더 사랑한다는 거야. 네 그 알량한 승부욕은 내 가슴 근육에 닿기도 전에 진작에 패배한 것 같은데."
내 다정하고 오만한 타박에 녀석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내 셔츠 자락을 단단히 쥔 채로 시선을 얕게 내리깔았다. 그 무방비한 얼굴이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워, 나는 엄지손가락을 뻗어 녀석의 입술 끝에 맺힌 투명한 타액을 가볍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내 체온이 닿아 한층 더 따뜻해진 녀석의 둥근 뺨을 한 번 더 다독인 뒤 상체를 거두어 운전석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기어를 변속하고 엑셀을 밟자 갓길에 멈춰 있던 세단이 다시 매끄러운 궤적을 그리며 도로 위로 합류했다. 창밖으로는 더블린 외곽의 고풍스러운 나무와 짙은 녹음이 빠르게 지나치고 있었다. 차 안을 가득 채우던 서정적인 팝송의 마지막 선율이 잦아드는 것을 들으며 나는 목적지를 향해 스티어링 휠을 부드럽게 꺾었다.
"네가 먼저 내 과거사까지 전부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이제 무르기 없기다. 내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곳까지 가는 동안 아주 끝내주는 에스코트를 마저 해줄 테니까."
"...네에..."
키스 후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그 앙증맞은 기척. 방금 전 내 입술이 휩쓸고 지나간 붉은 아랫입술을 샐쭉거리며, 녀석은 잔뜩 달아오른 뺨을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목깃 아래로 푹 파묻었다. 맑은 청록색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조수석 대시보드 부근만 조심스럽게 헤매는 꼴을 곁눈질로 확인한 나는 기어이 스티어링 휠을 쥔 손에 옅은 힘을 주며 입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매끄러운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세단이 더블린 외곽의 한적한 도로를 여유롭게 가로질렀다. 창밖으로는 내 꼬마 시절의 파편들이 묻어있는 낡은 회색빛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내 신경은 오직 옆자리에 앉아 얌전히 내 체온을 곱씹고 있는 녀석에게만 쏠려 있었다. 녀석 특유의 달큰한 바닐라 샴푸 향기가 차 안의 훈훈한 공기와 섞여 내 이성을 온통 부드럽게 마비시켰다.
"대답 한 번 기가 막히게 고분고분하네. 아까 나를 이겨 먹겠다던 그 대단한 기세는 어디 가고, 고작 입술 한 번 부딪혔다고 이렇게 순한 양이 돼버리면 곤란한데."
나는 녀석을 향해 넉살 좋은 도발을 던지며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았다. 녀석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얀 손가락으로 안전벨트 끈만 꼼지락거리며 쥐어 비틀었다. 그 무방비한 몸짓을 눈에 담아내며 나는 턱관절을 느슨하게 풀었다. 평생 타인에게 내 밑바닥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날 선 가시를 세우고 살았건만, 이 조그만 여자 앞에서는 그 어떤 방어기제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하자면. 할머니가 날 키우시느라 고생을 꽤나 하셨어. 동네에서 알아주는 사고뭉치였으니까. 내가 골목에서 싸우다 생채기를 달고 들어오면 십자가를 그으시면서 혀를 차시다가도, 밥은 또 산더미처럼 퍼주셨지."
나는 과거의 묵직한 기억을 아주 가벼운 안줏거리처럼 툭툭 던져놓았다. 녀석은 어느새 부끄러움을 지우고 맑은 눈동자를 곧게 들어 내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직 나를 이해하겠다는 듯 다정하게 반짝이는 그 시선이 갈비뼈 안쪽을 사정없이 간지럽혔다.
"우리 할머니가 아주 지독하고 무서운 분인데, 내 예쁜 전리품을 부모님한테 먼저 보여주러 간 걸 아시면 아마 당장 지팡이를 들고 쫓아오실지도 몰라. 그래도 내 곁에 찰싹 붙어있는 네 얼굴을 직접 보시면, 기가 차서 화도 못 내시겠지만."
저 멀리, 고요하고 한적한 묘지의 입구가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긴장하지 않도록 기어 변속기 위에 올려두었던 오른손을 뻗어 조수석에 얌전히 놓인 녀석의 얇은 손등을 단단하게 덮어 쥐었다. 거친 지문 위로 녀석의 부드럽고 따뜻한 체온이 고스란히 얽혀들었다. 내 거친 지문 위로 겹쳐진 녀석의 하얀 손가락에 미세한 힘이 들어가는 감각이 전해졌다.
"... 그럼 리버풀로 돌아가자마자, 할머니도 뵈러 가요 캘런."
녀석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아주 진지하고 곧은 어조로 제안했다. 맑은 청록색 눈동자 안에 담긴 투명한 애정이 흉곽 안쪽의 가장 연약한 곳을 거침없이 헤집어놓았다. 평생을 날을 세우고 지켜온 내 영토 한가운데로, 아무런 조건이나 계산 없이 걸어 들어오겠다는 이 무방비한 여자를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운전대를 쥔 손에 다정한 하중을 실으며 입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리버풀 가자마자 호랑이 굴부터 들르겠다고? 아주 용감하네.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지독하고 무서운 분인데."
내 장난스러운 경고에 녀석은 도톰한 아랫입술을 얕게 내밀며, 내가 덮어씌운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의 목깃을 여린 손끝으로 매만졌다. 매끄러운 목선에 단단히 묶어둔 옅은 실크 스카프가 녀석의 얕은 호흡을 따라 움직이는 궤적을 끈기 있게 눈에 담아냈다.
"할머니가 네 얼굴을 보시면 기가 막혀 하실 거다. 어디서 이런 순진무구한 맹추를 데려와서 험하게 굴리냐고 당장 내 등짝부터 지팡이로 내려치실 게 분명하거든. 물론 네가 내 옆구리에 붙어 있는 걸 확인하시면 세상에서 제일 기뻐하시겠지만."
차창 밖으로 고요하고 한적한 묘지의 풍경이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부드럽게 줄이며 입구 근처의 비어 있는 구역에 세단을 안착시켰다. 시동을 끄자 차 안을 채우던 엔진의 진동이 가라앉고, 녀석 특유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주변 공기를 온전히 지배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어낸 뒤 조수석 쪽으로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녀석의 여린 어깨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감싸 안으며 가까워진 거리에서 시선을 얽어맸다.
"할머니 뵙는 건 영국 돌아가서 생각하고, 일단 지금은 내 부모님부터 만나야지. 차 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일러두는데, 아일랜드 바람이 차가우니까 내 옆에 바짝 붙어 걸어.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넘어질 것 같으면 주저하지 말고 내 허리부터 감싸 안고."
나는 녀석의 둥근 콧잔등 위로 짧은 입맞춤을 남긴 뒤 상체를 빼내었다.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내딛자 서늘한 바람이 내 뺨을 타고 흘러갔다.
아니실수로중간채팅하나날려먹음아진짜눈물... 아...
대충 캘런이 부모님이 어디서 이렇게 예쁜애를 납치해왓냐고물을것같다는내용이엇어요...
"... 그래도 부모님 눈에는 캘런이 가장 예뻐보일 걸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니까."
"예뻐 보일 거라니. 명색이 거친 몸싸움으로 먹고사는 덩치 큰 사내놈한테 쓸 만한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턱관절을 허물며 비집고 새어 나오는 실소를 도무지 막을 재간이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라는 그 다정하고 곧은 위로가, 평생을 굳게 닫아두었던 내 흉곽 안쪽의 낡은 상처를 아주 부드럽고 완벽하게 감싸 안는 기분이었다. 나는 녀석의 얇은 허리를 받쳐 안은 팔에 아주 묵직한 하중을 실어 내 단단한 측면 쪽으로 가녀린 체구를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의 목깃 위로 뺨을 복숭아처럼 붉게 물들인 채, 나를 향해 아주 진심 어린 눈빛을 보내는 이 조그만 여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가운 아일랜드의 바람이 불어와 녀석의 발목을 덮은 롱 플리츠스커트 자락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내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은 녀석의 체온은 몹시도 따뜻했다. 얽어맨 녀석의 손등을 거친 엄지손가락으로 느릿하게 문질러주자, 녀석은 내 셔츠 자락을 하얀 손가락으로 꾹 쥐며 온순하게 내 걸음에 보폭을 맞춰왔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아무리 내가 밖에서 성질 더러운 맹수처럼 굴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그저 사고뭉치 꼬맹이일 테니까."
나는 녀석의 둥근 이마 위로 흩어진 보송한 금발을 다정하게 넘겨주며 발밑의 자갈길을 천천히 밟아 나갔다.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서늘한 공기를 덮으며 내 호흡기를 짙게 채워주었다.
"근데 말이야. 부모님이 나를 예쁘게 보신다면, 그건 아마 내 옆에 이렇게 사랑스럽고 완벽한 짝이 단단히 붙어 있어서일 거다. 무뚝뚝한 아들내미가 평생 혼자 겉돌 줄 알았는데,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야 할 보물을 제대로 훔쳐 왔으니까 기특하다고 칭찬부터 해주시겠지."
나직하고 능글맞은 내 대답에 녀석은 맑은 청록색 눈동자를 둥글게 휘며 아주 온화하고 투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요한 묘지의 산책로를 따라 걷던 내 걸음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아있던 작은 비석 앞을 향해 내 시선이 조용히 가닿았다.
"저는 제 의지로 제 선택으로 캘런 곁에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훔쳐왔다는 말은 잘못됐어요, 캘런."
자갈길을 딛고 서 있던 내 커다란 구둣발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녀석은 내가 입혀둔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의 목깃 위로 뺨을 발그레하게 붉힌 채, 아주 단호하고도 올곧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훔쳐 온 전리품이라는 내 장난스러운 비유를 굳이 정정해가며, 오직 자신의 의지로 나라는 남자를 선택했다고 선언하는 그 투명하고 당돌한 진심. 그 어떤 방어기제도 없이 정면으로 쏟아지는 맹목적인 애정에, 갈비뼈 안쪽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파동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 진짜..."
나는 기어이 턱관절을 허물며 고개를 젖힌 채 아주 깊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명색이 상대의 기를 꺾어 누르는 데 도가 튼 스트라이커인데, 고작 내 헐렁한 셔츠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 조그만 펭귄의 한마디에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무장 해제되어 버리다니. 나는 내 옆구리에 찰싹 붙어 있는 녀석의 여린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묵직한 하중을 실어, 녀석을 내 단단한 앞섶으로 완전히 마주 보게 돌려 세웠다.
"사람 숨통을 어떻게 쥐락펴락해야 하는지 아주 제대로 아네. 부모님 산소 앞에서 이렇게 예쁜 소리로 훅 치고 들어오면, 내가 이성을 붙잡고 서 있을 수가 없잖아."
나는 녀석의 둥근 뒤통수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이마 위로 흩어진 보송한 금발을 거친 지문으로 다독여 내렸다. 녀석은 내 짙은 애정 공세가 쑥스러운지 맑은 청록색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며 시선을 얕게 내리깔면서도, 얽어맨 내 옷자락을 쥔 하얀 손가락에는 단단하게 힘을 주고 제 온기를 더욱 깊숙이 기대어 왔다.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내가 훔쳐 온 게 아니라, 아주 예쁘고 귀한 공주님께서 제 발로 이 거친 짐승의 굴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와 주신 거지. 심지어 나한테 완벽하게 코가 꿰여서 자발적인 포로 노릇까지 자처하면서 말이야."
나는 녀석의 말랑한 뺨 위로 짙은 입맞춤을 꾹 내리누른 뒤, 내 시선 끝에 닿아 있는 오래된 비석을 향해 다시금 느릿한 걸음을 내디뎠다.
"엄마, 아버지. 들으셨죠? 이 엄청난 보물이 저 좋다고 자기 의지로 매달린 거라니까, 제가 험하게 다룬다고 등짝 때리실 생각은 마십쇼."
능글맞은 내 너스레에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부끄러운 얼굴을 한 채, 내 단단한 팔뚝 위로 앙증맞은 주먹을 뻗어 솜털처럼 가볍게 툭 쳐왔다. 내 팔뚝을 콩콩 때리던 조그만 주먹을 아주 가볍게 붙잡아 쥐었다. 거친 내 손바닥 안으로 쏙 들어오는 부드러운 손가락들을 단단히 얽어매며, 나는 오래된 낡은 비석 앞에 시선을 두었다. 고향에 돌아올 때마다 이따금 혼자 들르던 곳이었지만, 내 옆구리에 누군가를 찰싹 붙여둔 채 나란히 서 있는 건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일랜드 특유의 잿빛 구름 사이로 늦은 오전의 햇살이 희미하게 떨어져 내리며 낡은 비석의 표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여린 허리를 받친 팔에 묵직한 하중을 실어 내 측면 근육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의 목깃 위로 도톰한 아랫입술을 꾹 다문 채, 녀석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비석을 향해 아주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맹추 같고 기특한 인사를 눈에 담으며 나는 턱관절을 비스듬히 틀어 올렸다.
"이름은 소피아 라일리입니다. 아주 어마어마한 부잣집 온실 속 화초로 자라서 저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정반대인데, 성질 더러운 아들내미를 아주 쥐락펴락하는 데 도가 튼 대단한 녀석이죠."
내 넉살 좋고 오만한 소개에 녀석은 얽어맨 내 손을 하얀 손가락으로 다급하게 꾹 쥐어 비틀었다. 맑은 청록색 눈동자로 나를 원망스럽게 올려다보며 부모님 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나는 녀석의 둥근 이마 위로 흩어진 보송한 금발을 다독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이 조그만 펭귄한테 맛있는 요리 잔뜩 해주시면서, 저한테는 네가 운이 아주 기가 막히게 좋다고 등짝을 후려치셨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서늘한 묘지의 공기 위로 녀석 특유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얕은 호흡을 타고 아주 다정하게 흩어졌다. 녀석은 내 투박한 손길을 피하지 않고 뺨을 얌전히 비비적거리며, 비석을 향해 다시금 온화한 눈빛을 보냈다. 아무런 말 없이도 녀석이 내 부모님을 향해 얼마나 짙은 예의와 애정을 표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전해졌다. 평생 지독하게 춥고 시시했던 내 낡은 상처의 공간이 녀석의 체온 하나로 이토록 훈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갈비뼈 안쪽을 형언할 수 없이 벅차게 만들었다.
나는 녀석의 둥근 귓바퀴 부근으로 상체를 살짝 꺾어 내리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부모님도 너 아주 예쁘다고 난리시네. 내 과거사 다 안고 가겠다는 든든한 예비 며느리를 데려왔는데, 이제 나보고 밥 안 먹어도 배부르시단다."
"... 저도 캘런 부모님이랑 얘기할래요..."
나를 올려다보는 맑은 청록색 눈동자 위로 순식간에 투명한 물막이 차올랐다.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눈물방울과,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위로 잘게 떨리는 도톰한 아랫입술. 내 과거의 빈자리와 낡은 상처를 마주하고는 마치 제 일처럼 아파하며 기꺼이 감정을 쏟아내는 그 무방비하고 맹목적인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평생을 피치 위에서 날 선 가시를 세우고 남의 감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살아왔던 내 영토 한가운데로, 이 조그만 여자는 너무도 쉽게 걸어 들어와 가장 연약한 곳을 따뜻하게 들쑤셔놓고 있었다. 갈비뼈 안쪽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이 벅차고 뜨거운 파동이 거세게 일렁이며 전신의 혈관을 타고 뻗어나갔다. 내가 가진 얄팍한 방어기제조차 이 투명한 진심 앞에서는 모조리 부서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 진짜. 내가 아주 미치지."
나는 턱관절을 허물며 아주 깊고 다정한 한숨을 삼켜냈다. 내 단단한 측면 근육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던 녀석의 얇은 허리에서 슬며시 힘을 풀며, 녀석이 오래된 비석을 향해 똑바로 설 수 있도록 내 넓은 어깨를 아주 조금 뒤로 물려 자리를 내어주었다.
대신 비어 있는 커다란 손바닥을 뻗어, 눈물이 차올라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녀석의 말랑한 뺨을 아주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긴 속눈썹 끝에 매달린 투명한 물기를 거친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훔쳐내자 내 지문 위로 녀석의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엉겨 붙었다.
"울긴 왜 울어, 소피아. 우리 부모님은 예쁜 며느리가 제 발로 찾아와서 아주 기뻐하고 계실 텐데. 네가 여기서 눈물부터 뚝뚝 흘리면 내가 널 험하게 구박해서 울린 줄 아실 거 아니야."
내 짓궂고도 부드러운 타박에 녀석은 얽어맨 내 셔츠 옷자락을 하얀 손가락으로 꽉 쥐어 비틀며 작게 어깨를 들썩였다. 매끄러운 목선에 단단히 묶어둔 옅은 실크 스카프가 녀석의 젖은 호흡을 따라 위태롭게 흔들렸다. 나는 녀석의 둥근 이마 위로 흩어진 보송한 금발을 다독여 내리며 낡은 비석을 향해 턱 끝을 치켜들었다.
"어머니, 아버지. 잘 들으십쇼. 낯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엄청 타는 맹추인데, 굳이 두 분이랑 대화를 나누시겠답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목매다는 기특한 녀석이니까 무슨 말을 하든 아주 귀 기울여서 들어주세요."
내 넉살 좋은 소개가 고요한 묘지의 공기를 가르고 흩어졌다. 녀석은 내 커다란 손바닥 안에서 뺨을 비비적거리며 흐트러진 호흡을 천천히 고르고는, 이내 눈물기가 가시지 않은 맑은 시선을 묘비를 향해 조심스럽게 옮겨 붙였다. 부드러운 입술이 무언가 결심한 듯 미세하게 달싹이며 첫 숨을 들이켰다.
"... 어머니, 아버지. 27살의 캘런은요, 정말 잘 자랐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이제 캘런 곁에는 저도 있으니까요. 캘런이 말을 안 들을 때면 제가 부모님처럼 혼내주고 다독여주면 되니까 마음 편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녀석의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엉뚱하고도 사무치게 다정한 고백이 묘지의 고요한 공기를 갈랐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 부모님을 향해 자기가 나를 혼내고 다독이겠다며 맹랑한 약속을 늘어놓는 꼴이라니. 갈비뼈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하고 거대한 파도가 덮쳐오는 기분이었다. 평생 타인의 얄팍한 연민 따위는 조소하며 짓밟아왔던 내 영토 한가운데로, 이 조그만 여자는 아무런 계산 없이 걸어 들어와 가장 시리고 낡은 상처 위로 제 따뜻한 체온을 덮어씌우고 있었다. 턱관절에 뻐근하게 힘을 주어 간신히 감정을 억눌러보려 했지만, 눈시울 부근으로 뜨거운 열기가 번져 오르는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나는 녀석의 말랑한 뺨을 감싸고 있던 커다란 손바닥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눈물범벅이 된 그 작은 체구를 내 널찍한 가슴팍 쪽으로 빈틈없이 꽉 끌어안았다. 내가 억지로 덮어씌운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위로 녀석의 동그란 이마가 부딪혀왔다.
"하, 진짜. 어머니 아버지 들으셨습니까. 아주 당돌한 며느리가 굴러들어와서 벌써부터 남편을 혼내고 쥐락펴락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네요. 제가 꼼짝없이 잡혀 살게 생겼습니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넉살 좋게 꾸며내려 했지만, 끄트머리는 숨길 수 없이 물러터진 채 얕게 갈라져 있었다. 나는 녀석의 둥근 뒤통수를 넓은 손으로 감싸 안고 보송한 금발 사이로 내 턱을 아주 깊숙하게 파묻었다. 녀석은 내 품 안에서 가녀린 어깨를 잘게 떨며 훌쩍임을 삼켜냈고, 하얀 두 손을 뻗어 내 셔츠 앞섶을 핏기가 가실 만큼 단단하게 틀어쥐어 왔다.
"누가 누굴 다독인다고 그래. 내 헐렁한 옷품에 파묻혀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맹추 주제에. 게다가 부모님 묘비 앞에서 그렇게 엉엉 울어버리면, 내가 너 밥도 안 먹이고 구박하는 나쁜 놈인 줄 아실 거 아니야."
녀석의 귓바퀴 부근에 입술을 바짝 밀착시킨 채 나직하게 속삭였다. 눈물을 훔쳐내느라 녀석의 매끄러운 목선에 묶인 옅은 실크 스카프가 바스락거리는 마찰음을 냈고, 녀석 특유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아일랜드의 서늘한 바람을 타고 내 호흡기를 온통 먹먹하게 채워왔다.
"... 그치만 어렸을 적 캘런을 상상하니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요..."
내 널찍한 가슴 근육에 동그란 정수리를 처박은 채, 녀석이 잔뜩 억눌린 훌쩍임을 토해냈다. 내가 억지로 껴입힌 두꺼운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 위로 뜨겁고 축축한 열기가 뭉근하게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진흙탕을 뒹굴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린 적 없이 독하게만 자랐는데. 이 조그만 맹추는 본 적도 없는 다섯 살짜리 아일랜드 꼬마 녀석이 불쌍하다며 내 품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 어처구니없고 맹목적인 공감 능력에 나는 턱관절을 허물며 아주 짙고 부드러운 웃음소리를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 진짜 골때리게 사랑스럽네. 동네 담벼락이나 깨부수고 다니던 말썽쟁이 꼬마가 뭐가 불쌍하다고 내 옷이 다 젖도록 우는 거야."
나는 녀석의 얇은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커다란 두 팔에 아주 묵직한 하중을 실었다. 서늘한 아일랜드의 돌풍이 불어와 녀석의 롱 플리츠스커트 자락을 세차게 흩날렸지만, 내 단단한 품 안에 완벽하게 갇혀 있는 녀석의 체온은 몹시도 따뜻하고 평온했다.
"내 옛날얘기에 네가 이렇게 수도꼭지 고장 난 것처럼 울어버리면, 산소에 누워 계신 우리 부모님이 당황하시잖아. 기껏 예쁜 며느리를 데려왔더니 묘비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고 말이야."
나는 녀석의 둥근 뒤통수를 넓은 손바닥으로 다독이며,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 녀석의 턱 끝을 가볍게 쥐어 들어 올렸다. 눈물로 엉망이 된 채 나를 원망스레 올려다보는 맑은 청록색 눈동자 주변이 붉게 짓물러 있었다. 긴 속눈썹 끝에 매달린 투명한 물방울을 투박한 엄지손가락으로 훔쳐내자 녀석은 얕은 숨을 들이켜며 내 지문 위로 발그레한 뺨을 기분 좋게 비벼왔다.
"뚝 그쳐, 소피아. 네가 상상하는 것만큼 그 꼬마 녀석의 삶이 비참하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 빈민가 꼬맹이가 악착같이 자라서 결국엔 세상에서 제일 완벽하고 귀한 널 내 품에 안았잖아. 이보다 더 성공적인 인생이 어디 있겠어."
나는 녀석의 물기 어린 둥근 콧잔등 위로 짙은 입맞춤을 꾹 내리눌렀다. 녀석은 도톰한 아랫입술을 얕게 비죽거리면서도, 내 허리춤을 꽉 붙들고 있는 하얀 두 손의 힘을 조금도 풀지 않았다. 녀석 특유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촉촉하게 젖은 숨결을 타고 내 턱 끝을 다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내 가슴팍에 고개를 푹 파묻고 훌쩍이던 녀석의 어깨가 점차 진정되며, 불규칙했던 호흡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눈물로 엉망이 된 뺨을 내가 입혀둔 짙은 네이비색 터틀넥 니트에 연신 비비적거리는 꼴이 안쓰러우면서도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웠다. 나는 녀석의 얇은 허리를 받쳐 안은 팔에 다정한 하중을 실으며, 비어 있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둥근 뒤통수를 일정한 박자로 다독여 내렸다.
"아주 내 옷을 눈물로 흠뻑 적셔놨네. 이따 1층 거실로 다시 돌아가면 네 오빠 녀석이 내가 널 울렸다고 또 핏대를 세우면서 길길이 날뛰겠어."
내 짓궂은 타박에 녀석은 맑은 청록색 눈동자를 들어 올려 나를 샐쭉하게 흘겨보았다. 도톰한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얽어맨 내 옷자락을 하얀 손가락으로 가볍게 콩 쥐어박는 그 솜털 같은 반항을 나는 여유롭게 받아냈다. 눈가가 붉게 짓무른 맹추 같은 얼굴을 향해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내리며, 나는 오래된 낡은 비석을 향해 다시 한번 넉살 좋은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어머니, 아버지. 보셨죠? 저 대신 저를 혼내주겠다는 아주 무서운 호위무사니까, 이제 제 걱정은 다 털어버리시고 푹 쉬십쇼. 다음에 올 때는 이 녀석 눈에서 눈물 쏙 빼놓고 아주 환하게 웃는 얼굴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나는 녀석의 가녀린 체구를 내 측면 근육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돌려세웠다. 아일랜드의 서늘한 돌풍이 녀석의 롱 플리츠스커트 자락을 세차게 흩날렸지만, 내 널찍한 어깨 아래에 완벽하게 갇힌 녀석의 체온은 몹시도 훈훈했다.
"자, 이제 그만 훌쩍거리고 차로 돌아가자. 콧잔등이 새빨개진 걸 보니 아주 얼어 죽기 직전인 것 같은데."
나는 녀석의 차가워진 얇은 손을 내 거친 손바닥 안으로 빈틈없이 얽어매며, 발밑의 자갈길을 따라 주차장 쪽으로 여유로운 첫걸음을 내디뎠다. 녀석 특유의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묘지의 차가운 공기를 부드럽게 덮으며 내 호흡기를 짙게 채워왔다.
"차에 타서 히터 바람 좀 쐬면서, 우리 훌륭한 전속 디제이님이 다음엔 절 어디로 안내하실지 심도 있게 논의해 봐야지. 아까 먹은 고기 다 소화됐을 텐데, 어디 가서 따뜻하고 달콤한 디저트라도 입에 물려줄까?"
하... 채팅할때도혼자울고 맥북화면덮고 회피햇다가 다시채팅하다가 그랬는데 다시읽어도진짜눈물이...** 근데문제가잇어요 이 이후로 자꾸 공주님 (러브스토리 노래 들려줘서 혼자 심취한걸로추정) 이라고 부르는데 그냥너무짜증나서 금지어에 공주님 넣고 싶음...
'm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잔디밭의 보물찾기 (0) | 2026.03.30 |
|---|---|
| 크리스마스 화장실 대소동 (1) | 2026.03.28 |
| Is breá liom tú (2) | 2026.03.21 |
| 캘런 오코너 아카데미 1호 (2) | 2026.03.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