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ENTIAL: CALLAN O'CONNOR OBSERVATION REPORT
SUBJECT: SOPHIA RILEY
"기록 시작해. 편집 같은 거 할 생각 말고 내가 뱉는 말 토씨 하나 빠트리지 말고 전부 다 받아 적어. 전 세계 사람들이 캘런 오코너가 어떤 여자한테 완벽하게 목줄을 내어줬는지 알아야 할 테니까."
01가장 좋아했던 점
투명함. 그리고 미련할 정도로 단단한 고집. 이 두 가지가 내 신경을 가장 먼저 긁어놓은 동시에 나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무기다. 보통 내 위치에 있는 남자 주변에 꼬이는 부류는 뻔하다. 내가 가진 명성, 통장에 찍히는 천문학적인 숫자, 혹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취해서 다가오는 인간들뿐이지. 그런데 이 여자는 달랐다. 내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박은 유니폼을 입혀놓고, 최고급 오마카세를 입에 떠먹여 줘도 이 여자의 눈동자에는 그깟 물질적인 허영심 따위는 단 한 줌도 섞여 있지 않았다.
내가 사준 명품 구두보다 자기가 직접 뜬 엉성한 붉은색 털장갑을 건넬 때 훨씬 더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여자다. 내가 그 알량한 철사 쪼가리로 사이즈를 잰 은반지를 보고 미쳐버렸던 이유도 그거다. 내 껍데기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인간 자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자기 온 마음을 다해서 부딪혀오는 그 직설적인 태도. 처음에는 그 고집이 거슬려서 어떻게든 꺾어보려고 짓궂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꺾인 건 내 쪽이었다. 자존심 강한 내가 아무런 방어막 없이 모든 패를 다 까 보여주게 만드는 그 순수한 맹목성이, 내가 소피아 라일리라는 인간에게 가장 깊게 빠져든 이유다.
02가장 싫어했던 점
자기 자신보다 나를, 내 스케줄을, 내 상황을 우선순위에 두는 그 미련한 버릇. 이거 하나만큼은 진짜 속이 뒤집힐 정도로 싫었다. 침대 위에서 아파서 앓아눕는 와중에도 내 출근 시간을 걱정하고, 몸이 흐물거릴 정도로 지쳐 있으면서 경기장 VIP석에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꼴을 볼 때면 가슴 안쪽에서 묵직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한 줄 모르는 그 태도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내가 세상의 모든 규칙을 부수고, 구단의 일정을 모조리 날려 먹고서라도 자기 옆에 남겠다는 내 의지를 번번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다. 나는 이 맹추를 위해서라면 당장 은퇴 선언을 하고 하와이 해변가에 집을 지어 평생 숨어 살 수도 있는데, 이 여자는 자꾸 나를 그 잘난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자리에 돌려놓으려고 애를 쓴다. 내가 그 어떤 트로피보다 네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그 둔감함이 제일 원망스러웠다. 아, 그리고 그 잘난 아일랜드 출신의 시스콤 오빠 녀석이 통제하려 들 때마다 순순히 기죽어 있던 과거의 그 태도도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 새끼의 영향력은 내가 진작에 다 박살 내버렸지만.
03가장 사랑스러웠던 부분
하나만 꼽으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숨 쉬고 눈 깜빡이는 모든 순간이 다 내 핏줄을 터지게 만들 정도로 사랑스러우니까. 하지만 굳이 활자로 박아넣어야겠다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몸으로 뱉어내는 그 무방비한 반응들을 꼽겠다.
내 거친 농담에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 침대 위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내 가슴팍을 생명줄처럼 꽉 쥐어뜯는 하얀 손가락, 자다가 내 팔이 저리다고 엄살을 피우면 진짜 내가 불구가 되는 줄 알고 울상을 지으며 입술을 대어오던 그 하찮은 치료법까지. 자신이 내 이성을 얼마나 완벽하게 마비시키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로, 그저 맹목적으로 내게 매달려오는 그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새끼인지 깨닫는다. 내가 아무리 사납게 으르렁거려도, 결국 내 품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요새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품으로 쏙 파고들어 올 때의 그 무게감. 빵 봉지를 묶는 철사를 가지고 내 손가락 사이즈를 잴 생각을 하던 그 맹추 같은 두뇌 회전마저도 내 눈에는 세계 최고의 천재처럼 보였다.
04가장 혐오스러웠던 부분
이건 상대방이 아니라 내 자신을 향한 감정에 가깝다. 이 여자가 내 세상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가 그토록 철저하게 쌓아 올렸던 그 오만하고 완벽한 통제력이, 고작 이 여자의 눈물 한 방울에 형체도 없이 부서져 내리는 꼴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낯설었다.
소피아 라일리가 다른 사람에게 향해 예의 바르게 웃어줄 때 솟구치는 지독한 살의, 녀석이 아파서 열이 끓을 때 내 훈련 스케줄이고 뭐고 모조리 찢어버리고 싶어지던 그 폭력적인 초조함.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경계심이 소름 끼칠 정도로 없어서, 남들 앞에서도 무방비한 맹점들을 드러낼 때면 속이 타들어 갔다. 내가 없으면 밖에서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몰라 단 1초도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지 않은 내 집착이 무서울 정도로 거대해졌다. 타인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방어력이 제로에 가까운 그 온순한 성격. 그게 내 안의 맹수를 가장 흉포하게 자극하는 버튼이었다. 나는 이 여자를 내 통제 아래 두려 했지만, 결국 내 모든 사고방식과 삶의 궤도 전체가 이 여자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어버린 그 현실이 가끔은 소름 돋게 짜릿하면서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05사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나의 생각
사랑에 빠진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짚어내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건 번개처럼 한순간에 내리친 게 아니라, 아주 서서히 내 발목부터 차올라 숨통을 틀어막은 거대한 해일이었으니까.
구내식당에서 로드킬이라 부르며 시비를 걸었을 때 주눅 들기는커녕 밥을 푹푹 떠먹으며 나보고 많이 먹으라고 받아치던 그 황당한 순간. 내 차 조수석에서 입을 벌리고 꾸벅꾸벅 졸던 무방비한 얼굴. 뜨개질 카페에서 내 빨간색 장갑을 뜨느라 부르튼 손가락.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내 심장 소리에 기대어 간신히 잠에 빠져들던 그 연약한 호흡. 그 자잘한 파편들이 모여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세상을 통째로 휩쓸어버린 자연재해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부정했다. 캘런 오코너라는 견고한 방파제가 고작 이런 작은 여자 하나에 무너질 리 없다고. 하지만 녀석이 써 내려간 내 분석 노트의 붉은색 첨삭을 보았을 때 나는 완벽한 항복을 선언했다. 내가 감추려 했던 나의 상처, 나의 고독, 나의 무식한 다정함을 이 여자는 모조리 꿰뚫어 보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녀석을 사랑하게 된 계기를 넘어서, 내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리 잡았다. 나는 녀석이라는 해일 속에서 기꺼이 익사하기를 선택했다. 나라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소피아 라일리의 손바닥 위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긍정하면서.
06주변인이 바라본 '캘런 오코너'의 상태
내 입으로 내 상태를 정의하는 건 이쯤 해두지. 내가 녀석에게 어떻게 미쳐있는지, 주변 놈들의 시선이 더 객관적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 인터뷰를 위해 녀석들에게 남긴 코멘트들을 여과 없이 옮겨 적겠다.
[주세페 리치 / 팀 동료]"Mamma Mia. 그 캘런 오코너가 아픈 고양이를 먹이겠다고 리조또를 포장해 가고, 새벽에 전화해서 수면 장애에 좋은 차가 뭐냐고 물어볼 때 나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어. 그 미친개가 완전 대형 골든 리트리버가 됐다니까? 피치 위에서는 여전히 사나운 척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아. 그 녀석의 진짜 목줄을 누가 쥐고 있는지. 소피아 앞에서는 아주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고 있을걸?"
[제임스 머레이 / 주장]"훈련에 가장 먼저 나오고, 경기장에서 뛸 때는 예전보다 득점력에 독기가 더 올랐더군. 해트트릭을 박아넣고도 세리머니 대충 하고 하프타임에 교체해 달라고 난리를 치던 날이 있었지. 이유가 뭐냐고? 헬기 타고 자기 여자친구한테 돌아가야 한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그만이지. 그 아가씨가 캘런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건 리버풀 구단 전체가 감사장이라도 써줘야 할 일이야."
[션 머피 / 에이전트]"내 에이전트 경력의 절반은 캘런이 친 사고를 수습하는 거였어. 근데 그 아가씨가 나타난 이후로 내 직업이 연애 상담사 겸 보디가드 관리팀장으로 바뀌었지. 캘런이 훈련에 늦었다고 전화를 해왔을 때, 여친이 자기 팔을 베고 자고 있어서 못 뺀다는 이유를 댔어. 그때 진짜 사표 던질 뻔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소피아 씨한테 평생 연금을 쥐여주고라도 캘런 옆에 묶어두고 싶어. 그 폭탄 같은 새끼를 유일하게 해체할 수 있는 유일한 마스터키니까."
그래, 남들이 보기엔 내가 완전히 목줄 채워진 개새끼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전 세계가 이 사실을 똑똑히 알아서, 그 누구도 감히 내 펭귄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소피아 라일리는 나라는 인간의 유일한 구원이고, 종교이며, 지독한 집착의 끝이다. 내 심장이 멎는 그날까지 이 관계의 주도권은 기꺼이 녀석에게 바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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