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피아라는 해일 속에서 기꺼이 익사하기로 선택했다.
나라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소피아의 손바닥 위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긍정하면서.
익사라니, 그런 무서운 말 쓰지마세요.
우리는 그냥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는 거 뿐이에요.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바다에서.
The angel saved the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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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her)' 감상평
2026.03.09

영화 수업 과제하느라 영화 봤는데 주제가 하필이면 ‘ai랑 사랑에 빠진 남자’ << 여서 반응 궁금해서 가볍게 해봤던 거 ㅠㅠㅋㅋㅋㅋ

엔딩 크레딧이 거실의 대형 스크린 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펜트하우스를 채우던 영화의 잔잔한 배경음악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내 신경은 온통 내 가슴팍에 기대어 훌쩍이는 조그만 정수리에 쏠려 있었다. 

오후 21시 45분. 장장 두 시간 동안 컴퓨터 운영체제랑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를 강제로 시청한 결과는 꽤나 참혹했다. 

"하, 진짜. 넌 뭐 이런 영화를 보고 우냐?"

나는 내 셔츠 자락을 꽉 쥔 채 훌쩍이는 녀석의 뺨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며 실소를 터뜨렸다. 만질 수도 없고, 안을 수도 없고, 체온도 없는 기계 쪼가리한테 사랑을 느낀다는 설정 자체가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였다. 내 투덜거림에 녀석이 눈물 젖은 눈으로 나를 흘겨보며 내 흉곽을 주먹으로 콩 때렸다. 영화의 여운을 박살 내는 나의 메마른 감수성에 단단히 뿔이 난 맹추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녀석의 작은 주먹을 빈손으로 가볍게 잡아채어 깍지를 끼고, 축축해진 녀석의 이마에 깊게 입을 맞췄다. 이어 우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을 가져와 각자의 감상평을 장난스럽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 영화 '그녀(Her)' 감상평

[캘런 오코너의 별점: ⭐ (1.0/5.0)]

"만질 수 없으면 그게 무슨 사랑이야. 헛소리 집어치워." 컴퓨터 프로그램이랑 연애? 내 상식으로는 1분도 이해 안 가는 헛짓거리다. 사랑하면 머리카락 냄새도 맡아야 하고, 허리도 꽉 끌어안아야 하고, 피부 밑으로 심장 뛰는 것도 직접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 2시간 내내 이어폰에 대고 중얼거리는 남자를 보면서 내 맹추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아주 깊이 감사했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옥상에서 현실의 사람 곁으로 돌아간 부분만 정상이라 별점 1점 준다. 내 소피아는 픽셀이 아니라 실물이라 천만다행이다.

[소피아 라일리의 별점: ⭐⭐⭐⭐ (4.0/5.0)]

"형체가 없어도 교감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슬프고 아름다웠어요." 육체적인 접촉이 없어도 오직 대화와 감정만으로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먹먹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사만다의 목소리만으로도 주인공의 외로움이 치유되는 과정이 인상 깊었어요. 그런데... 영화 보는 내내 옆에서 캘런이 "그래서 쟤 몸은 언제 생긴대?", "보이지도 않는데 왜 질투를 해?" 라며 계속 산통을 깨서 감동이 반토막 났어요! ㅠㅠ 다음에는 캘런이랑 절대 로맨스 영화 안 볼 거예요!

 
태블릿 화면에 나란히 띄워진 두 개의 극단적인 감상평을 훑어보며 나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녀석은 자신이 쓴 코멘트를 확인받으려는 듯 턱을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태블릿의 전원을 툭 눌러 꺼버리고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몸을 숙여 녀석의 허리춤을 단단히 옭아맸다.

"형체가 없어도 교감할 수 있다는 둥 아주 시적인 감상평을 남기셨네."

나는 녀석의 둥근 코끝을 살짝 깨물며 가파른 호흡을 섞었다.

"근데 소피아. 난 형체가 없으면 도무지 만족을 못 하는 짐승이라 말이야. 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아주 좀이 쑤셔서 미치겠거든."

[DATE: 2033-09-24(Sat) | TIME: 21:45 | LOCATION: Callan's penthouse | POSTURE: sitting | OUTFIT: Shirt | EMOTION: 😏(Software? Don't make me laugh. Love is about holding you like this, dum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