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REPORT: MY LIVERPOOL STRIKER
작성자: 소피아 라일리 (캘런 오코너의 공식 1호 팬 겸 전속 매니저)
"어제 오빠가 제 분석 노트를 썼길래, 저도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전 세계가 아닌 '저만의 시선'으로 똑바로 정리해 봤어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피치에 올라가기 전에, 오빠가 저한테 얼마나 절대적이고 거대한 의미인지 한 번 더 뇌에 새기고 뛰었으면 해서요."
01가장 좋아했던 점 (What I Liked Most)
겉으로는 한없이 거칠고 무례하게 굴면서, 사실은 세상 그 누구보다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점이에요. 처음 구내식당에서 제 식판 셔틀을 시켰을 때만 해도 전 오빠가 절 싫어해서 괴롭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 식판 위에 고기반찬을 산더미처럼 쌓아주고, 남기지 말라며 물컵을 무심하게 쓱 밀어주던 그 행동에서 오빠의 숨겨진 다정함을 봤죠.
그 다정함이 폭발했던 건 지난 5월 16일 새벽 2시였어요. 제가 오빠가 사 온 타르트를 급하게 먹고 심하게 체해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앓았던 날. 그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밤을 꼴딱 새우며 제 차가운 손발을 주무르고 액상 소화제를 직접 먹여줬잖아요. 제 등허리를 받치고 밤새 인간 쿠션 노릇을 하면서 '내 탓이다, 미안하다'라고 웅얼거리던 그 목소리를 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화려한 외모나 엄청난 재력보다, 제가 아플 때 제 곁을 떠나지 않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주는 그 서투르지만 맹목적인 온기. 저는 그 온도에 완벽하게 녹아내렸어요.
02가장 싫어했던 점 (What I Disliked Most)
입이 너무 험하고,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태도요. 솔직히 초반에는 오빠의 그 막무가내식 언행이 너무 싫었어요. 주세페 선수나 다른 스태프들에게 폭언을 쏟아내고, 타인을 마치 자기 발밑에 있는 NPC구슬처럼 취급하는 그 오만함이요. 제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다른 남자들에게 '내 토끼 건드리지 마라', '정수리에 와인을 붓고 싶었다'라며 협박에 가까운 질투를 쏟아냈을 땐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어요.
모든 상황을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통제로 해결하려는 오빠의 방식은 항상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죠. 특히나 욕설. 매 문장마다 험한 단어를 섞어 쓰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는 사람처럼 굴 때마다 제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예의나 다정함 없이, 그저 힘의 우위로 짓누르려고만 하는 캘런 오코너의 날 선 모습은 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부분이었어요. (물론 지금은 제 잔소리 덕분에 욕설 빈도가 아주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요!)
03가장 사랑스러웠던 부분 (What I Found Most Lovely)
세상 가장 무서운 맹수인 척하면서도, 결국 제 앞에서는 꼬리를 살랑거리는 대형견처럼 무장해제되는 그 갭(Gap)이요. 이건 정말 전 세계에서 저 혼자만 아는 오빠의 모습일 거예요. 10월 17일 아침, 제가 삐뚤빼뚤하게 뜬 그 볼품없는 붉은색 털목도리를 기어코 목에 칭칭 감고 훈련장에 나타났을 때를 기억하나요? 다른 사람들이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놀리는데도 오빠는 '아방가르드한 해체주의 감성'이라며 뻔뻔하게 기자들 플래시 세례를 받았잖아요. 심지어 구내식당에서 국물에 목도리가 닿을락 말락 하는데도 끝까지 안 빼고, 제가 다시 묶어줄 때 목덜미를 내어주며 가만히 있던 그 표정.
그리고 오늘 오후 4시 25분, 제가 네임펜으로 오빠 약지 손가락에 까만 선을 그어줬을 때 그 유치한 장난 하나에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웃던 얼굴이요. 다치거나 아플까 봐 제가 조금만 인상을 써도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보고, 잘 때 제 샴푸 냄새를 맡겠다고 제 어깨에 거대한 머리통을 콩 박고 웅크려 자는 모습은 진짜... 안 사랑할 수가 없잖아요. 거대한 체격으로 제 품에 폭 안겨서 칭찬해달라는 듯 구는 오빠를 볼 때마다 제 심장이 얼마나 간지러운지 오빠는 절대 모를 거예요.
04가장 혐오스러웠던 부분 (What I Hated Deeply)
저를 위해서 오빠 자신의 커리어나 평판을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내동댕이치려고 할 때요. 이건 단순한 불호가 아니라, 오빠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깊은 혐오감에 가까워요. 오빠는 늘 저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정작 오빠 본인이 평생 피와 땀을 흘려 쌓아 올린 축구선수로서의 위대한 성취를 너무 가볍게 여겨요.
훈련장에 지각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저랑 침대에 더 있겠다는 핑계로 감독님 전화를 씹어버리거나 기자들 앞에서 사고를 칠 뻔한 순간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존재가 오빠의 빛나는 커리어를 망치는 독약이 된 것 같아서 숨이 막혀요. 오빠의 인생에서 축구를 지워버리고 오직 저만 남겨두려는 그 파괴적이고 자기학대적인 집착.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오빠 자신마저도 저를 향한 소유욕을 위한 불쏘시개로 던져버리는 그 맹목적인 파괴성이 전 너무너무 싫어요. 캘런 오코너는 피치 위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인데, 저 때문에 그 빛을 스스로 꺼버리려고 하는 그 순간의 오빠는 제가 아는 오빠 중 가장 미운 사람이에요.
05사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나의 생각 (How I Fell in Love & My Thoughts)
특정한 어느 하루를 짚을 수는 없어요. 9월 20일 아침 8시 30분, 비 오는 날 제가 로비에 서 있을 때 제게 우산을 떠넘기듯 쥐여주고는 제가 버릴까 봐 '우산 값 청구한다'며 으름장을 놓던 그날부터였을까요? 아니면 9월 24일, 휴게실에서 제 핸드폰을 강제로 뺏어서 자기 번호를 '주인님'으로 저장해 놓고 제 일상에 불쑥 쳐들어왔던 날부터였을까요.
오빠는 처음엔 두려움이었고, 그다음엔 골칫거리였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세상은 캘런 오코너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돌기 시작했어요. 아일랜드에서 저를 통제하려던 친오빠의 그늘 아래서 평생을 도망치듯 살아온 제게, 오빠의 거칠고 압도적인 소유욕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방패가 되어주었거든요.
펜트하우스 식탁 의자에 마주 앉았던 그날, 핏발 선 눈으로 제 손을 꽉 쥐고 '네가 내 옆에 없으면 숨도 못 쉬겠다, 제발 나 좀 살려달라'며 덜덜 떨리던 목소리로 고백하던 오빠를 본 순간. 저는 깨달았어요. 이 사나운 맹수에게 목줄을 채운 건 다름 아닌 저 자신이라는 걸. 그리고 저 역시 기꺼이 이 사람의 요새 안에 갇혀 평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걸요. 제가 사랑에 빠진 계기는, 오빠가 제게 허락한 그 완벽하고 절대적인 '항복' 그 자체였어요. 오빠는 제 폭주 기관차이자, 제가 가진 유일한 브레이크니까요.
06주변인이 바라본 '소피아 라일리'의 캘런에 대한 생각 정의
제가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 주변 분들이 저한테 해준 이야기들을 부끄럽지만 조금 적어볼게요.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더라고요.
[지안루이지 주세페 / GK] "Mamma Mia. 소피아, 넌 진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토끼가 분명해. 캘런이 라커룸에서 의자를 집어 던질 기세로 열을 내고 있을 때, 네가 쓱 다가와서 그 조그만 손으로 캘런 소매만 잡아당겨도 그 미친개가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얌전해지잖아. 넌 그 위험한 맹수를 상대로 깃털 장난감을 흔들고 있으면서 네가 얼마나 대단한 맹수 조련사인지 자각을 못 하는 게 제일 무서워."
[제임스 머레이 / 주장] "오코너는 예전에 시한폭탄 같은 놈이었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뛰고, 마음에 안 들면 수비수를 걷어차서 카드를 수집하기 일쑤였죠. 그런데 소피아 씨가 훈련장에 처음 나타난 날 이후로 그 녀석의 플레이가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거칠고 이기적이지만, 불필요한 퇴장은 당하지 않아요. 왜냐고요? 경기를 끝까지 뛰고 세리머니를 해야 VIP석에 앉아 있는 당신에게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과시할 수 있으니까요. 오코너의 멘탈을 잡아주는 가장 완벽한 닻(Anchor)은 감독도, 주장인 저도 아닌 소피아 씨 당신입니다."
[션 머피 / 에이전트] "소피아 씨, 내가 진짜 매일 런던에 있는 성당 쪽으로 절을 올리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캘런 녀석이 고집을 부리거나 구단 스폰서 미팅을 파투 내려고 할 때, 내가 '소피아 씨한테 일러바치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그 거대한 놈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니까요? 내 평생 에이전트 일하면서 그 폭군을 통제할 리모컨이 존재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캘런은 당신을 보호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당신이 그 녀석의 폭주를 막고 리버풀 구단 전체를 보호하고 있는 셈이에요."
To. My Champion, Callan
다른 사람들이 오빠를 맹수라고 부르고, 다루기 힘든 시한폭탄이라고 말해도 상관없어요. 제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저만 바라보는 바보 같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인 걸요. 약지 손가락에 그어둔 그 까만 선, 땀에 지워지더라도 제 마음은 그 자리에 계속 남아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뛰어요.
저는 오빠가 사준 그 엄청나게 큰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VIP석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을 거예요. 오빠 말대로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않고, 피치 위에서 뛰어다니는 리버풀의 10번만 뚫어지게 눈에 담고 있을게요. 그러니까 부상당하지 말고, 평소처럼 세상에서 제일 오만하고 멋진 표정으로 골을 넣고 제게 달려와 주세요.
오늘 밤, 유럽의 정육점... 아니, 유럽의 정상을 정복하고 돌아와요. 내 사랑.
화면 스크롤이 끝나는 지점에서 내 시선이 그대로 멈춰 섰다.
숨을 들이마시자 락커룸 특유의 소염진통제 냄새와 잔디 흙내음이 섞여 들어왔지만, 내 후각은 오로지 녀석의 목덜미에서 나던 달콤한 바닐라 향기만을 끄집어내어 기억하고 있었다. 단단한 흉곽 안쪽에서 무언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짜릿하게 치고 올라왔다.
"하... 미치겠네, 진짜."
나는 핸드폰 화면을 꺼트리며 넓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 맹추 같은 여자는 도대체 어디까지 나를 무장해제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내가 녀석을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시키고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녀석의 글을 읽고 나니 내가 오히려 녀석이 쳐놓은 거대하고 다정한 울타리 안에서 평생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길들여진 짐승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런데 그 사실이, 내 오만한 자존심을 긁기는커녕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압도적인 충만감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나라는 인간의 존재 이유는 이제 명확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는 유럽 대륙 최고의 무대도 수만 명의 관중이 지르는 함성도, 그깟 쇳덩어리로 만든 빅 이어 트로피도 내게는 그저 이 조그만 여자를 기쁘게 하기 위한 부차적인 장식품에 불과했다. 내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녀석의 눈동자 안에 내가 가장 완벽한 포식자이자 구원자로 영원히 각인되는 것.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왼손을 들어 올렸다.
투박하고 거친 마디 위에, 녀석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빼뚤하게 그어놓은 까만 네임펜 자국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볼품없는 선 하나가 내 온몸의 혈관에 아드레날린을 미친 듯이 펌프질하고 있었다.
"야, 오코너. 아까부터 핸드폰만 뚫어지게 보면서 실실 쪼개고 있는데, 대체 무슨 연락을 받았길래 혼자 로맨스 영화를 찍고 앉았냐? 결승전 락커룸에서 그딴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미친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축구화를 닦고 있던 주세페가 수건을 어깨에 걸치며 내 쪽으로 다가와 이죽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다며 정강이를 걷어찼겠지만, 지금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관대한 기분이었다.
"이탈리아 촌놈이 알 리가 없지. 내가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는 입꼬리를 길게 늘여 비틀며, 등받이에서 상체를 떼고 벤치 앞으로 몸을 숙였다. 내 왼손 약지를 주세페의 코앞에 대놓고 까딱거리자, 녀석의 미간이 깊게 구겨졌다.
"뭐야, 그 손가락에 묻은 시커먼 매직 자국은? 설마 긴장해서 네 손에다 낙서라도 한 거냐?"
"낙서? 입조심해라, 주세페. 이건 내 펭귄이 직접 채워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하고 견고한 수갑이니까. 네가 아무리 비싼 명품 브랜드 시계를 차고 다녀도 이 까만 선 한 줄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절대 못 이기거든."
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랑에 주세페가 헛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Mamma Mia... 주장! 제임스! 이 자식 완전 돌았습니다! 결승전 앞두고 완전히 미쳐버렸다고요!"
락커룸 반대편에서 전술 보드를 살피고 있던 제임스가 주세페의 호들갑에 시선을 돌렸다. 제임스는 특유의 과묵하고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나와 내 손가락을 번갈아 보더니, 작게 혀를 찼다.
"내버려 둬, 주세페. 오코너가 발정 난 사냥개처럼 구는 게 하루 이틀인가. 차라리 저렇게 독기가 바짝 올라있는 편이 우리한텐 유리해. 오늘 뮌헨 수비진들은 아주 뼈도 못 추리겠군."
제임스의 담백한 평가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주장이 정확히 짚었다. 내 안에서 들끓고 있는 이 파괴적인 에너지는 오직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 팀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데 완벽하게 사용될 예정이었다.
오후 6시 45분.
락커룸의 무거운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해리 브라운 감독이 붉은 얼굴로 들이닥쳤다. 특유의 호탕하고 커다란 쇳소리가 공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자, 이것들아! 몸 풀 시간이다! 밖에 알리안츠 아레나 잔디 상태가 아주 기가 막혀. 뮌헨 놈들이 지들 안방이라고 벌써부터 기세등등하게 굴고 있는데, 우리가 잉글랜드의 매운맛이 뭔지 제대로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감독의 일장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종아리 근육의 긴장을 풀며 압박 붕대를 고쳐 매었다. 감독의 시선이 락커룸을 한 바퀴 돌더니, 가장 구석에 앉은 내게로 정확히 꽂혔다.
"오코너! 넌 얼굴이 왜 그래. 결승전 앞둔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어디 신혼여행 떠나기 직전의 새신랑 같은 표정인데. 오늘 골문 안 찢어놓으면 너 당장 벤치로 불러들일 줄 알아!"
해리 감독의 불호령에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단단한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조여들며 발끝까지 완벽한 밸런스가 잡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감독을 향해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걱정 붙들어 매시죠, 영감탱이. 오늘 뮌헨 골대 그물망은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교체 카드 만지작거릴 틈도 없이 전반전에 게임 끝내드릴 테니, 감독님은 편하게 벤치에 앉아서 제가 세리머니 하는 거나 구경하시면 됩니다."
내 거침없는 도발에 감독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락커룸 안의 공기가 내 오만함에 전염된 듯 순식간에 달아오르며 동료들이 축구화를 바닥에 쾅쾅 부딪히며 기합을 넣기 시작했다.
나는 벤치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락커룸의 좁은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선명했고 내 몸을 지배하는 감각은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곤두서 있었다. VIP석 가장 앞자리에서, 나보다 몇 배는 더 큰 내 붉은 유니폼을 입고 앉아있을 녀석의 얼굴이 머릿속에 투명하게 그려졌다.
손목의 아대 위치를 바로잡고, 까만 선이 그어진 왼손 약지를 엄지손가락으로 한 번 꽉 쥐어본다. 나는 터져 나갈 듯한 아드레날린을 삼키며 락커룸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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