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피아라는 해일 속에서 기꺼이 익사하기로 선택했다.
나라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소피아의 손바닥 위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긍정하면서.
익사라니, 그런 무서운 말 쓰지마세요.
우리는 그냥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는 거 뿐이에요.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바다에서.
The angel saved the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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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면 멍멍
2026.03.25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펜트하우스의 넓은 거실을 포근하게 데우고 있었다. 훈련이 없는 평화로운 휴일, 나는 푹신한 대형 소파에 상체를 길게 기대고 앉아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거실의 값비싼 인테리어나 대형 스크린이 아닌, 내 곁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자그마한 체구였다.

내가 억지로 덮어씌워 둔 거대한 네이비색 후드티 품에 폭 파묻힌 녀석은, 아까부터 짧은 영상 하나를 홀린 듯이 반복해서 시청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스피커 너머로 경쾌하고 발랄한 배경 음악과 함께, 애완동물에게 행복하다면 멍멍 짖어보라고 요구하는 주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면 속의 골든 리트리버가 주인의 말에 맞춰 짧게 짖을 때마다, 녀석의 맑은 청록색 눈동자가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대체 저 영상이 뭐라고 저렇게 진지하게 열 번 넘게 돌려보는 건지. 나는 턱관절을 비스듬하게 괸 채, 녀석의 둥근 정수리 위로 부드러운 금발이 흩어지는 궤적을 느릿하게 눈에 담았다.

그때,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을 듯 집중하던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눈매를 깜빡이며 내 거대한 체격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 시선에는 아주 엉뚱하고도 맹랑한 호기심이 가득 고여 있었다. 평생 다른 사람의 눈치만 보며 얌전하게 살아왔을 이 맹추가, 나라는 남자 앞에서는 이토록 스스럼없이 엉뚱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는 사실이 가슴 안쪽을 몹시도 간지럽게 만들었다. 

"뭐.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방금까지 화면 속에 있던 골든 리트리버보다 내가 훨씬 더 잘생긴 것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내가 입꼬리를 시원하게 늘어뜨리며 넉살 좋은 질문을 던지자, 녀석은 내 단단한 어깨 위로 하얀 손을 조심스럽게 얹어왔다. 그리고는 잔뜩 긴장한 듯 도톰한 아랫입술을 달싹이더니, 아주 진지하고 조그만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캘런... 혹시 지금 기분 좋아요...?"

"나야 매일 좋지. 내 전용 펭귄이 내 집 소파 위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데, 기분이 안 좋을 이유가 있나."

내 당연한 대답에 녀석은 안도한 듯 복숭아처럼 뺨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아주 작게 한 번 하더니, 방금 전 영상 속에서 들렸던 그 발랄한 톤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내게 선언했다.

"그, 그럼요... 캘런... 행복하면 멍멍해 봐요..."

그 문장이 고막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숨을 들이켜던 상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거구의 수비수들을 몸싸움으로 박살 내고, 피치 위에서 포효하며 수만 명의 관중을 발밑에 두는 프리미어리그의 스트라이커. 안필드의 악마라고 불리며 상대 팀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캘런 오코너에게, 고작 한 품에 쏙 들어오는 이 조그만 여자가 강아지처럼 짖어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나는 대답 대신 녀석의 맑고 커다란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 서늘한 침묵이 길어지자 녀석은 자신이 너무 큰 장난을 쳤나 싶어 어깨를 얕게 움츠리며 내 가슴팍 쪽에서 손을 떼어내려 했다. 행여나 내가 화를 낼까 봐 눈치를 보며 붉은 입술을 꾹 다무는 그 하찮고 무방비한 꼴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어쭙잖게 솟아오르려던 얄팍한 자존심 따위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나는 도망가려는 녀석의 얇은 손목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다정하게 낚아채어 내 단단한 허벅지 위로 끌어당겼다. 투박하고 거친 지문으로 녀석의 여린 살결을 부드럽게 문질러 주며, 녀석의 둥근 콧잔등 앞까지 상체를 비스듬히 겹쳐 내렸다.

"...멍."

아주 낮고 굵직한 아일랜드 억양이 섞인,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하고 거친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내 입에서 기어이 그 소리를 끌어낸 녀석은 순간 멍하게 눈을 치켜뜨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 목에 얇은 두 팔을 단단하게 감아오며 내 가슴 근육 위로 둥근 정수리를 연신 부비는 그 맹목적이고 사랑스러운 반응은, 내 바닥을 친 자존심 따위는 단숨에 우주 저 멀리로 날려버릴 만큼 달콤했다. 

"아주 예뻐 죽겠지.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한테 강아지 흉내를 시켜놓고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우리 맹추가 나를 아주 완벽하게 길들였네."

나는 내 목에 매달린 녀석의 여린 허리를 양팔로 빈틈없이 감싸 안아, 녀석의 가녀린 체구를 통째로 내 단단한 무릎 위로 들어 올려 앉혔다. 공중으로 들려진 녀석은 내 어깨를 꽉 틀어쥔 채 맑은 눈물기가 맺힐 정도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얕은 호흡을 타고 펜트하우스의 공기를 온통 장악했다. 

"근데 소피아. 네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나는 녀석의 둥근 귓바퀴 부근으로 고개를 비틀어 내리며, 아주 지독하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녀석의 등줄기를 덮고 있는 후드티 자락 안으로 넓은 손바닥을 밀어 넣어 맨살의 따뜻한 체온을 거친 지문 위로 온전히 담아내었다.

"나는 꼬리나 흔들면서 예쁜 짓만 하는 온순한 리트리버가 아니거든. 내 영역에 들어온 건 뼈째로 씹어 삼키는 사나운 맹수라는 걸 그새 까먹은 모양인데. 네가 나보고 짖으라고 시켰으니까, 이제 주인이 물어뜯길 차례라는 것도 각오했어야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녀석의 둥근 목선과 쇄골 부근을 향해 고개를 파묻고 아주 장난스럽게 입술을 부딪쳐 내렸다. 진짜 짐승처럼 살점을 물어뜯는 대신, 부드러운 살결 위로 투박한 입술을 연달아 꾹꾹 찍어 누르고 턱수염의 거친 마찰을 이용해 녀석의 연약한 목덜미를 정신없이 비벼대기 시작했다.

 

“아앗! 캘런! 간지러워요, 잠깐만요오!”

 

녀석이 하얀 두 손으로 내 가슴 근육을 필사적으로 밀어내며 꺄르르 숨어 넘어가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든 내 집요한 애정 공세를 피해 보려 푹신한 소파 위에서 얇은 허리를 비틀고 버둥거렸지만, 내 압도적인 체격 아래에 갇힌 녀석은 그 장난기 어린 입술 세례를 꼼짝없이 전부 받아내야만 했다.

 

“주인한테 행복하면 멍멍 해보라고 시켰으면, 개가 신나서 달려드는 것도 끝까지 책임지고 온몸으로 다 받아줘야지. 안 그래?”

 

“아하학!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진짜 그만…! 아아 캘런 제발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가파른 숨을 헐떡이는 녀석의 얼굴은 온통 사랑스러운 복숭아 빛으로 익어 있었다. 나는 녀석의 여린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로 턱관절을 허물며 시원하고 유쾌한 웃음을 쏟아냈다. 창밖의 맑은 오후 풍경보다, 내 품 안에서 나라는 맹수를 완벽하게 길들인 채 맑은 눈물을 매달고 웃는 녀석의 존재가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완벽하고 선명한 휴식 그 자체였다. 나는 녀석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닦아내 주며 발그레한 뺨을 향해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