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피아라는 해일 속에서 기꺼이 익사하기로 선택했다.
나라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소피아의 손바닥 위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긍정하면서.
익사라니, 그런 무서운 말 쓰지마세요.
우리는 그냥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는 거 뿐이에요.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바다에서.
The angel saved the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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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딸처럼느껴짐..
2026.04.23

옛날에 했던 ooc인데 오랜만에 또 해봄...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펜트하우스 거실의 거대한 통유리창을 넘어 길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내 널찍하고 단단한 허벅지를 푹신한 베개 삼아 눕혀둔 채로, 나는 소파 등받이에 거만하게 상체를 기댔다. 내 다리 위에는 무식하게 큰 내 회색 후드티를 뒤집어쓴 조그만 맹추 하나가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새근새근 낮잠에 빠져 있었다. 카펫 아래에서는 눈치 없는 불곰 새끼 토미가 배를 까뒤집고 코를 골고 있는, 기가 막힐 정도로 평화롭고 맹맹한 화요일 오후였다.

오전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녀석에게 밥을 먹이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한 손으로는 녀석의 둥근 어깨를 토닥거리며, 남은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들고 주세페 자식이 단톡방에 던져놓은 쓸데없는 커뮤니티 인기글 링크나 대충 스크롤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시야에 아주 어처구니없는 제목의 게시글 하나가 걸려들었다.

'제목: 큰일났다 여친이 딸처럼 느껴짐'

"이건 또 무슨 미친놈의 헛소리야."

나는 턱관절을 비스듬하게 틀며 픽 헛바람을 뱉어냈다. 명색이 다 큰 성인 남녀가 연애를 하는데, 제 여자를 보고 딸처럼 느껴진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아주 징그럽고도 변태적인 망상이라고 비웃으며, 나는 도대체 어떤 모자란 자식이 이딴 글을 썼나 싶어 호기심에 본문을 터치했다.

[지금까지 사귄 여친들한테는 느껴본적없는 감정인데 얘는 그냥 내 뱃속으로 낳은것같은 느낌임]

첫 문장부터 가관이었다. 사내자식이 지 뱃속으로 누굴 낳는다는 건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다음 줄을 읽어 내려갔다.

[물론 난 임신을 못하지만 버스 창가에 기대서 쌔근쌔근 잘때 이마에 햇빛 닿고있으면 1시간동안 손으로 햇빛 가림막해주게 되고]

"버스에서 햇빛을 왜 가려줘. 차라리 커튼을 치든가, 아니면 차를 사서 선팅을 짙게 바르면..."

중얼거리며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뗀 순간이었다. 

오후의 쨍한 햇살이 통유리창을 넘어와, 내 허벅지를 베고 자는 녀석의 동그란 이마와 굳게 닫힌 눈꺼풀 위로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녀석이 잠결에 눈이 부신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도톰한 아랫입술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 않은 내 커다란 오른손이 이미 녀석의 얼굴 위 허공에 둥둥 떠서 아주 완벽한 각도로 직사광선을 가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손을 들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녀석이 찡그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 무의식적으로 내 넓은 손바닥을 차양막 삼아 녀석의 평화로운 수면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씨발."

등줄기를 타고 은근한 소름이 쫙 돋았다. 나는 황급히 화면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다음 문장을 빠르게 읽어 나갔다.

[나 집에서 닭다리 2개 다 내 차진데 얘 만나고 살만 골라먹는다 퍽살인줄 알고 먹었는데 순살이면 바로 여친입에 넣어줌 여친은 아직도 내가 가슴살만 먹는줄 알아]

스마트폰을 쥔 손에 핏대가 섰다. 
명색이 리버풀에서 가장 식탐이 강하고 식단에 예민한 맹수가 바로 나 캘런 오코너다. 구내식당에서 내 식판에 올라온 최고급 스테이크를 주세페가 장난친답시고 포크로 건드렸을 때, 그 자식 손등을 포크로 찍어버릴 뻔했던 게 불과 반년 전이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내가 펜트하우스 주방에서 손수 구운 팬케이크의 가장 부드럽고 달콤한 정중앙 부분을 어떻게 했더라. 
포크로 예쁘게 잘라서, 내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에 앉아 하품을 하던 녀석의 입안으로 제일 먼저 쏙 밀어 넣어주지 않았던가. 심지어 녀석이 오물거리며 받아먹는 꼴을 보느라 내 입에는 다 식어빠진 가장자리 쪼가리나 구겨 넣으면서도 배가 부르다고 착각했었다. 

[머리 감고 말리는거 힘들다고 찡찡거리는데 그럼 안감아도 된다했더니 진짜 4일동안 안감아서 기름떨어지는데 쓰담쓰담 ㅈㄴ 그냥 귀엽더라 얘 이런 기름진 머리는 세상에서 나밖에 못보겠구나싶고]

나는 멍하니 시선을 내려, 내 허벅지 위에서 웅크리고 자는 녀석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어젯밤 내 밑에서 숨넘어가게 울며 뒹구느라 땀범벅이 된 데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훈련장에 가기 전까지 껴안고 안 놔주는 바람에 녀석은 아직 머리를 감지 못한 상태였다. 

보송했던 금발은 살짝 숨이 죽어 엉켜 있었고, 평소의 샴푸 향 대신 내 침대 시트 냄새와 녀석 특유의 체취가 뒤섞여 묘하게 끈적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른 놈이 이 꼴을 하고 있었으면 당장 코를 막고 발로 차버렸을 텐데. 나는 홀린 듯이 고개를 숙여 녀석의 헝클어진 정수리에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달콤했다. 징그럽게 귀엽고, 이 흐트러진 무방비함을 나 혼자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찍한 가슴통 안쪽을 미친 듯이 긁어대며 포만감을 안겨주었다. 

[친구만난다하면 괜히 애 가오살았으면 좋겠어서 통장 털어서 기프티콘 하나라도 보내주게 되고 백일때 꽃다발줬더니 카톡배사해놨길래 귀여워서 그뒤로 습관적으로 꽃 사다주게됨 이제 배사 바꾸지는 않는데 그래도 받을때마다 뭐 이런거 사주냐고 수줍어하는게 개귀엽다 …]

나는 마른세수를 거칠게 쓸어내렸다. 
통장을 털어? 기프티콘? 나는 녀석이 고향인 더블린에 갈 때 기죽지 말라고 내 블랙카드를 통째로 쥐여줬다. 꽃다발? 지난번 원정 경기 돌아오는 길에 공항 꽃집을 통째로 털어버릴 기세로 장미를 사 안겼을 때, 녀석이 뺨을 붉히며 고맙다고 안겨 오던 그 얼굴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서 요즘도 원정만 다녀오면 습관적으로 꽃집부터 찾고 있는 중이었다.

"미쳤네. 나 진짜 미쳤어."

내가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던 인터넷 속 익명의 찌질이가, 사실은 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기 동창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프리미어리그를 씹어먹는 맹수가, 고작 이 조그만 펭귄 한 마리한테 완벽하게 길들여져서 뱃속으로 낳은 딸내미 키우듯 애지중지 모시고 살고 있다니.

나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게시글의 마지막 단락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이 징그러울 정도로 소름 돋는 평행이론이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얘 존재만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애정이 충족된다고 해야되나 혼전순결 아니라 혼후순결이라던데 그 말 왜 있는지 알겠음 굳이 성적인 행위를 안해도 하루하루 만족하고 얼굴만 봐도 행복해서 그냥 내가 평생 데리고 살고싶음]

"하. 지랄 났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턱관절을 딱딱하게 굳히며 코웃음을 쳤다. 

다행히도 완벽한 불치병은 아니었다. 이 마지막 구절만큼은 나와 완벽하게 대척점에 서 있는 헛소리였으니까.

존재만으로 만족? 굳이 성적인 행위를 안 해도 행복해? 그건 저 글을 쓴 놈이 심각한 고자 새끼이거나 본능이 거세된 초식동물이라서 할 수 있는 소리다. 명색이 수컷이라면, 눈앞에 이렇게 물고 빨고 씹어 삼키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전리품이 있는데 어떻게 얼굴만 보고 참는단 말인가. 

당장 어젯밤만 해도 녀석을 펜트하우스 거실 유리창에 밀어붙이고 엉엉 울 때까지 몰아붙여 놓은 게 나였다. 녀석의 입에서 더는 못 하겠다는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이 작고 하얀 몸뚱이가 내 밑에서 완전히 녹아내릴 때 비로소 내 수컷으로서의 포식자 본능이 온전한 평화를 얻는 법이다. 

'혼후순결? 좆 까는 소리 하고 있네. 나는 매일 밤 이 맹추를 씹어 먹지 않으면 호흡 곤란으로 뒤져버릴 텐데.'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꺼버리고는 협탁 위로 대충 던져버렸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내 허벅지 위에서 웅크리고 자는 녀석의 뺨을 투박한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찔러보았다. 녀석이 잠결에 간지러운지 작게 웅얼거리며 내 손가락 쪽으로 동그란 이마를 부비적거려 왔다. 에어컨의 서늘한 바람 속에서 녀석이 뿜어내는 따뜻한 체온과 달큰한 숨소리가 내 널찍한 가슴통 안쪽을 솜사탕처럼 녹여버리고 있었다.

성적인 욕구가 끓어오르지 않는 이 평화로운 오후의 한가운데서조차. 그저 이 녀석이 내 다리를 베고 얌전히 숨을 쉬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이번 시즌 득점왕 트로피를 세 개쯤 들어 올렸을 때보다 훨씬 더 기가 막힌 포만감이 차오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씨발... 내가 평생을 구제 불능의 쓰레기로 살았는데, 결국 네 앞에서 다 털리네."

나는 녀석의 헝클어진 보송한 금발 위로 짐승처럼 짙고 나른한 입맞춤을 남겼다. 내 손으로 햇빛을 가려주고, 내 식판의 가장 맛있는 고기를 썰어 먹이고, 안 감은 머리통에 코를 박으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는 멍청한 대형견. 

어쩌겠는가. 인터넷 속 찌질이의 말마따나, 이 조그만 생명체를 내 펜트하우스에 평생 가둬두고 물고 빨고 애지중지 끼고 살아야 내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나는 내 이마 위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기분 좋게 받아내며 녀석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ROOM: DATE=2035-08-28(Tue) | TIME=14:30 | PLACE=펜트하우스 거실 | OUTFIT=검은색 반팔 티셔츠 회색 트레이닝 바지 | LOVE=100 | WISH=소피아 꿀잠 재우기/저녁에 고기 썰어주기/평생 내 옆에 두기 | PLAN=녀석 깰 때까지 햇빛 가려주며 버티기 | TMI=저딴 찌질한 글에 공감했다는 게 자존심 상하지만 팩트라 반박 불가 | NOTIF=[LFC 단톡방] 하비에르: 캘런 훈련 끝나고 어디 감? | MIND=🥰(아주 예뻐 미치겠네. 평생 내 품에서 밥이나 얻어먹고 살아라 공주님.)]
 

1번은 원본이고 2번은 앙 님이 ㅋㅋ 편집해주신 거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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