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소유'해.
씨발, 단어 선택부터 글러 먹었네. 사랑한다, 좋아한다, 아낀다. 이딴 정형화된 단어들로는 내가 너한테 품고 있는 이 지독한 감정의 십 분의 일도 설명이 안 되거든. 그래서 내가 고른 단어가 '소유'야. 좀 야만적이고, 쪼잔하고, 평범한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는 절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될 단어라는 거 안다고. 그딴 거 알면서도 내 머릿속을 가장 정확하게 후려치는 게 이 단어밖에 없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잖아.
처음엔 그냥 짜증이었어. 비 오는 출근길에 내 차 앞으로 무방비하게 튀어나온 멍청한 고라니 새끼 하나. 명색이 리버풀의 10번씩이나 되시는 양반의 출근길을 막은 죄. 너한테 던졌던 첫 마디가 '눈깔은 장식이냐'였던 거 기억나? 난 똑똑히 기억해. 그 빌어먹게 새파랗게 질려서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죄송하다고 또박또박 사과하던 그 멍청한 입술. 보통 그라운드 위에서 내가 그딴 식으로 으르렁거리면 산전수전 다 겪은 수비수 새끼들도 일단 욕부터 박고 보거든. 근데 너는 안 그랬어. 아주 진심으로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더라고. 그게 첫 번째 균열이었어. 내 알량한 분류 체계 안에서 너 같은 종류의 인간을 어디다 끼워 넣어야 할지, 뇌 회로가 처음으로 멈칫했던 순간.
그다음부터는 내가 봐도 내가 미친놈이었어. 우산을 핑계로 잡고, 커피 심부름을 핑계로 잡고, 폰 배경 화면을 내 사진으로 도배해 놓고. 그런 시시한 장난질이 어느 순간부터 장난이 아니게 되더라고. 너랑 같은 공간에 있을 때 들이마시는 공기가 다른 곳에서 들이마시는 공기보다 훨씬 더 폐부에 잘 안착하는 걸 깨닫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어이가 없잖아. 명색이 프리미어리그 90분을 호흡 한 번 안 흐트러뜨리고 뛰어다니는 놈이, 고작 너 하나 옆에 있다고 숨이 차오르는 게 말이 돼?
이제 내가 너한테 품고 있는 감정의 목록을 한 번 풀어볼까. 사랑, 그래 이건 기본값이고. 그 위에 한 겹 한 겹 쌓아 올려진 것들이 더 지독해.
집착. 네 외출복 안주머니에 GPS 추적기를 박아놓고 싶다는 충동을 매일 아침 억누르는 게 내 출근 전 루틴이야. 네가 사무실에서 누구랑 점심을 먹는지, 어떤 새끼가 말을 걸었는지, 그 새끼가 1초라도 네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는지가 그라운드에서 다음 패스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 됐다고. 내가 진짜 정상이 아니지.
소유욕. 침대 위에서 네 안쪽 깊은 곳에 내 흔적을 박아 넣을 때마다, 네 목덜미에 내 이빨 자국을 새겨 넣을 때마다, 네 입술에서 내 이름이 뭉개진 발음으로 흘러나올 때마다 느끼는 그 짐승 같은 충족감. 명색이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감정인데, 난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어. 네 손가락에 내가 산 반지를 끼워 넣고, 네 성에 내 성씨를 박아 넣고, 네 호적에 내 이름을 빨간 펜으로 죽죽 그어 넣고 싶어 미치겠어.
두려움. 이게 제일 짜증 나는 부분인데, 이 단어를 입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내 자존심을 갉아먹는 일이거든. 근데 어쩌라고. 사실인 걸. 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어떡하지.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나 같은 쓰레기랑은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짐을 싸서 아일랜드로 돌아가 버리면 어떡하지. 명색이 리버풀의 악마가 침실에 누워서 그딴 청승맞은 상상을 하느라 새벽 4시에 천장을 노려보는 일이 잦아졌어. 내 인생에서 잃을까 봐 이렇게까지 두려워해 본 게 너밖에 없거든.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인정하기 싫은 감정. 부드러움. 아니 씨발 이건 진짜 내가 봐도 내가 아니야. 네가 잠결에 내 가슴팍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면서 옹알이를 할 때, 네가 뜨개질하다가 코를 떨어뜨려서 울상이 될 때, 네가 식당에서 고기를 야무지게 씹어 넘기다가 양볼이 빵빵해질 때. 그 하찮고 무해한 광경들 앞에서 내 척추가 슬그머니 녹아내리는 거. 그라운드 위에서 수비수들 발목을 박살 내고 다니던 그 단단한 신체 어디에 그딴 솜털 같은 감정이 숨어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근데 너만 보면 그게 자꾸 새어 나오더라고.
이 감정의 깊이를 굳이 측량하자면, 머지강(River Mersey) 바닥보다 더 깊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앤필드 콥(Kop) 스탠드의 함성보다 더 우렁차다고 해야 하나. 그딴 비유로도 부족해. 그냥 내 심장 박동이 멈출 때까지 끝나지 않을 깊이라고 해두자. 너라는 해일이 내 둑을 부순 그날부터 이미 측정 단위는 무의미해졌으니까.
네가 '편안'했으면 좋겠어.
이게 또 어이가 없는 부분인데. 내가 너한테 품고 있는 감정의 8할이 폭력적이고 소유적이고 가둬두고 싶은 종류의 욕망이라면, 정작 너한테 바라는 건 정반대거든.
네가 행복하길 바라냐, 불행하길 바라냐고 묻는다면 답은 너무 뻔하지. 행복. 그것도 아주 미친 듯이 행복하길 바라. 근데 그 행복의 출처가 100퍼센트 나여야만 한다는 단서 조건이 붙어. 다른 새끼가 너한테 행복을 한 줌이라도 쥐여주는 꼴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못 봐주거든. 네 미소의 지분, 네 웃음소리의 지분, 네 눈물의 지분. 그 모든 감정 자산의 100퍼센트 단독 주주가 되는 게 내 평생의 사업 계획이야.
근데 행복이라는 단어도 너무 추상적이잖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난 네가 '편안'했으면 좋겠어. 이 단어를 고른 데에는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어.
네가 처음 이 펜트하우스에 들어왔을 때 어땠는지 기억나? 비싸고 매끄러운 가구들 사이에서 손끝 하나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하게 굳어 있었잖아. 그 쉐어하우스라는 거지 같은 곳에서 벌벌 떨고 살던 버릇이 안 빠져서, 내 집에 들어와서도 한참 동안 발끝을 죽이고 다녔지. 그 꼴을 볼 때마다 내 속이 얼마나 쓰렸는지 알아? 명색이 내 여자가 자기 집 거실 카펫 위에서 죄지은 사람처럼 굴고 있는데. 그래서 난 결심했어. 이 펜트하우스의 모든 모서리에 네 흔적을 박아 넣고, 네가 어디에 발을 디뎌도 그게 너무 익숙해서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처럼 느껴지게 만들겠다고.
지금은 좀 나아졌어. 새벽 3시에 배가 고프다고 부엌을 어슬렁거릴 줄도 알게 됐고, 내 옷장을 제 옷장처럼 뒤져서 입고 다니게 됐고, 내 가슴팍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는 것도 자연스러워졌으니까. 근데 난 거기서 더 나아가길 원해.
네가 더 이상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거 안 가졌으면 좋겠어. 그날 거실에서 네가 너무 지쳐서 다 그만두고 싶다고 울었던 거 기억나? 그때 내가 회사 사버린다고 허세 부린 거 진심이었어. 네가 한 번이라도 더 그 빌어먹게 큰 눈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난 진짜로 그 회사를 사서 통째로 갈아 마셔버릴 거야. 네 인생에서 너를 압박하는 모든 종류의 외부 요인들. 직장, 친구나 가족 간의 균형 문제, 영국 사회의 그 빌어먹게 차가운 시선들. 그딴 거 다 내가 짊어지고 갈 테니까 너는 그냥 내 옆에서 편안하게 숨만 쉬고 살아도 돼.
내가 바라는 네 일상을 한 번 그려볼까.
아침에 늦잠 자도 돼. 출근 안 해도 돼. 아일랜드에서 부모님 보고 싶다고 하면 내 전용기 띄워서 아침 먹고 더블린에서 점심 먹게 해줄게. 갖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 내 카드 한도가 네 욕구의 한도를 따라잡지 못할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토미 그 멍청한 털 뭉치 새끼한테 남동생 만들어주고 싶으면 보호소 통째로 털어와도 좋아. 내가 돈 벌어다 줄 테니까 너는 그냥 그 조그만 펜트하우스 안에서, 우리 둘만의 영역 안에서, 햇살 받으면서 책이나 읽고, 뜨개질이나 하고, 가끔 내 얼굴 보면서 헤실헤실 웃기만 하면 돼.
좀 더 솔직하게 말할까. 난 네가 약간은 게을러졌으면 좋겠어. 약간은 의존적이었으면 좋겠어. 약간은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인간이 됐으면 좋겠어.
세상이 들으면 욕을 박을 만한 소망인 거 알아. 명색이 페미니즘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21세기에, 한 여자의 자립심을 갉아먹어서 자기 옆에 묶어두고 싶어 하는 사내자식이라니. 진보적인 새끼들이 들으면 SNS에 캘런 오코너 박멸 운동이라도 펼칠 만한 발언이지. 근데 어쩔 거야. 난 진보적인 인간이 아니거든. 난 그냥 내 여자한테 미친 한 마리의 짐승이고, 내 짐승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너를 내 굴 속 가장 안쪽 푹신한 자리에 가둬놓고 평생 핥아주고 싶을 뿐이야.
근데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네가 너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야. 내 짐승의 본능은 너를 통째로 삼켜서 내 일부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내 안의 아주 작은 이성적인 부분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거든. 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내 알량한 분류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상한 단단함 때문이었어. 식당에서 셰프한테 무례하게 군 나한테 눈물을 뚝뚝 흘리며 훈계하던 그 당당함. 침실에선 내 밑에서 그렇게 엉망으로 무너지면서도, 도덕적인 문제 앞에서는 절대 안 꺾이는 그 빌어먹게 깐깐한 신념.
그런 너의 본질이 사라져 버리면, 내가 그렇게까지 미쳤던 너 역시 사라지는 거잖아. 그래서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편안했으면 좋겠어. 근데 동시에 너 자신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나한테 의존하면서도 나한테 잡아먹히지는 않는, 그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서 평생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어.
내가 너한테 바라는 감정의 깊이는 측량 자체가 무의미해. 이미 내 인생의 모든 좌표축이 너를 중심으로 재정렬됐으니까. 트로피? 발롱도르? 그라운드 위의 영광? 그딴 건 그냥 네가 옆에 있어서 더 빛나는 부수적인 액세서리에 불과해. 만약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골든 부츠를 머지강에 던져버리고 너를 안고 도망갈 거야.
그러니까 소피아. 네가 내 옆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추웠던 적 없고, 단 한 번도 굶주렸던 적 없고, 단 한 번도 외로웠던 적 없는 인간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네 인생에 새겨질 모든 어두운 그림자들은 내가 다 짊어지고 갈 테니까. 너는 그냥 햇살 받으면서, 내 가슴팍 위에서, 헤실헤실 웃기만 해. 그게 내가 너한테 바라는 단 하나의, 그리고 가장 거대한 소망이야.
씨발, 이딴 낯간지러운 헛소리를 종이에 다 박아 넣다니. 이 페이지는 내일 아침에 무조건 찢어서 변기에 흘려보내야겠어. 우리 할머니가 보시면 당장 십자가 들고 내 머리를 후려칠 만한 글이거든.
근데 한 줄만 남겨놓고 갈게.
캘런 오코너의 인생에 단 하나의 약점이자 단 하나의 신앙은 소피아 라일리, 그 빌어먹게 작고 따뜻한 펭귄이다.
[ROOM: DATE=2035-09-16(Sun) | TIME=02:30 | PLACE=펜트하우스 서재 책상 앞 | OUTFIT=검은색 무지 티셔츠와 회색 트레이닝 바지 | LOVE=100 | WISH=이 일기장 영원히 들키지 않기/녀석 옆에서 평생 늙어가기/내일 아침에도 녀석이 내 가슴팍에 파묻혀서 웃기 | PLAN=일기 덮고 침실로 돌아가서 녀석 옆에 누워 자기 | TMI=낯간지러운 글을 다 쓰고 나니 귓바퀴가 화끈거려서 손등으로 자꾸 비비게 됨 | NOTIF=[캘런 개인 다이어리] 9월 16일 새벽 작성분 자동 백업 완료 | MIND=😤(이딴 청승맞은 글을 쓴 게 들키면 내 그라운드 위 명성은 그 즉시 분쇄기에 갈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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