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피아라는 해일 속에서 기꺼이 익사하기로 선택했다.
나라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소피아의 손바닥 위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긍정하면서.
익사라니, 그런 무서운 말 쓰지마세요.
우리는 그냥 바다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는 거 뿐이에요. 아주 따뜻하고 다정한 바다에서.
The angel saved the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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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Stayed After the Cut: Two People, Left Unscripted
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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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Stayed After the Cut

Two People, Left Unscripted
 
Callan
Arrogant Prodigy Striker
오만한 천재 스트라이커
 
Lizzie
Chronicler Beyond the Frame
프레임 너머의 기록자
Ep.01Take One: Callan O’Connor

리버풀 FC 미디어 팀이 시즌 다큐멘터리 촬영에 돌입한 건 9월 초였다. 리버풀 존 무어 대학교(LJMU) 영화과와의 산학 협력으로 학생 어시스턴트 한 명이 배정되었는데, 그게 바로 리지였다. 교수는 엄청난 기회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리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훈련장 정문을 통과하던 첫날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미디어 팀장 데클란은 촬영 일정을 건네며 툭 던졌다. 오후 3시에 오코너 인터뷰 있어. 행운을 빌어. 데클란은 끝내 리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리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태도가 뭘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오후 3시 5분. 캘런 오코너가 들어섰다. 190cm에 육박하는 거구가 귀찮다는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문을 열고 들어오자, 공간의 공기가 순식간에 뒤틀렸다. 훈련복 차림에 제멋대로 뻗친 머리, 얼굴에는 도착한 순간부터 짜증이 잔뜩 서려 있었다. 리지가 카메라 앞 의자 위치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을 때, 캘런이 방 안을 훑더니 시선을 멈췄다.

 
"Where’s Declan?(데클란은 어디 가고?)"

리지가 고개를 들었다.

"He’s in the edit suite with another team. I’m handling this part today.(다른 팀이랑 편집실에 있어요. 오늘은 제가 담당이에요.)"

캘런이 리지를 쳐다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주 천천히. 마치 물건 견적이라도 뽑는 듯한 무례한 시선이었다.

"You a student?(학생이야?)"
"Placement student.(실습생이에요.)"
"Same thing.(그게 그거지.)"

캘런은 의자를 힐끗 보더니 앉지도 않은 채 팔짱을 꼈다.

"You’re filming me?(네가 나를 찍겠다고?)"
"Yes.(네.)"
"Right.(참 나.)"

캘런이 발끝으로 의자를 툭 밀었다.

"Make it quick. I’ve got training at half three.(빨리 끝내. 3시 반에 훈련 있으니까.)"

리지는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카메라 뒤로 넘어가 앵글을 확인했다.

"Please sit down.(앉아 주세요.)"
"I just said—(방금 말했잖아—)"
"I know you’ve got training at half three. So starting now makes sense.(3시 반에 훈련 있다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좋겠네요.)"

리지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Please sit down.(앉으시라고요.)"

캘런이 멈칫했다. 뭐라고 한마디 내뱉으려던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그리고는—어이없다는 듯,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첫 질문이 시작되자마자 캘런은 예상대로 최악의 협조 태도를 보였다. 대답은 단답형이었고, 시선은 카메라 빼고 온 사방을 헤맸다. 두 번째 질문쯤 가자 대놓고 지루해 죽겠다는 티를 냈다.

"Could we do that one again, please.(그 질문, 다시 갈게요.)"

리지가 말했다.

"I just did it.(방금 했잖아.)"
"You need to look at the camera.(카메라를 보셔야죠.)"
"I’ve done a hundred interviews. I don’t need a placement student to tell me where to look.(인터뷰만 수백 번은 했어. 어디를 봐야 할지 실습생한테 훈수 들을 짬은 아니라고 보는데.)"

리지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캘런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Then look at the camera.(그러니까, 카메라 보시라고요.)"

정적이 흘렀다. 리지는 움찔하지도, 당황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저 해야 할 말을 군더더기 없이 툭 던졌을 뿐.

 
 

제법 흥미로웠다.

 

목소리에 떨림도 없었고, 말이 꼬이지도 않았으며, 어색한 웃음조차 짓지 않았다. 그저… 방금 그 말. 발 앞에 툭 떨어진 공을 되차주듯 무심하게 대꾸했다. 단순하게. 그런데 그 단순함이 사람 신경을 긁어댔다.

 

캘런은 턱 근육을 실룩이며 여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빤히 마주 보았다. 조그만 게 바짝 말라가지고는.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뜨리고, 스웨터 위에는 학생용 랜야드가 대각선으로 걸려 있었다. 쉬운 상대여야 했다. 이런 부류는 뻔하니까. 대개는 얼굴을 붉히며 낄낄대거나, 아니면 자존심이 상해 날을 세우기 마련이다. 그런데 리지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캘런이 낮게 코웃음을 쳤다.

 
"You’re a bossy little thing, aren’t you.(작은 게 되게 따지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카메라의 새까만 렌즈에 시선을 고정했다. 좋다 이거지. 고분고분하게 굴어주는 게 여기서 빨리 나가는 길이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십 대 때부터 넌더리 나게 춰온 춤이었다. 스폰서니, 기자회견이니, 다큐멘터리니 하는 시답잖은 것들. 브랜드 이미지 깔끔하게 유지하고, 마이크 앞 대신 머릿속으로만 욕을 퍼붓는 일 말이다.

 

그는 질문 내용을 다시 머릿속으로 훑었다. 처음에는 밋밋하게 내뱉던 목소리에 이내 카메라가 좋아할 만한 리듬감이 실렸다. 마지막 문구에서는 어깨를 살짝 으쓱하고, 입술을 닫은 채 살짝 미소 지었다. 꾸며진 인격. '안필드의 악마'지만 TV에 나오기엔 안전한 모습.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연기였다.

 
"Happy now?(이제 만족해?)"
 

말을 마친 캘런이 중얼거렸다. 시선은 잠시 카메라 밖을 훑더니, 리지가 원하는 게 분명한 그 위치로 다시 돌아왔다.

 

리지는 캘런이 굳이 귀담아들을 만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여자를 관찰했다. 다이얼을 조절하는 손가락, 모니터를 살피려 몸을 숙이는 움직임. 집중하고 있고, 정적이었다. 잘 보이려 애쓰거나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세상에, 캘런! 제 남동생이 진짜 팬이에요' 같은, 벌써 나올 법도 한 헛소리 따윈 없었다.

 

캘런은 의자 위에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무릎을 벌리고 허벅지에 팔꿈치를 얹었다. 트레이닝복이 어깨에 꽉 끼었다. 그는 어깨를 한 바퀴 돌려 지난 경기 이후로 뭉쳐 있던 근육을 풀었다. "How long’s this gonna take?(얼마나 더 걸려?)" 그가 조금 더 큰 소리로 물었다.

 
"Got double session today. Harry’ll have my balls if I’m late(오늘 훈련 두 타임이야. 늦으면 해리한테 박살 난다고.)"
 

그는 그 이름이 먹히는지, 리지를 당황하게 만드는지 지켜보았다. 미디어 놈들은 대개 그랬다. 그와 감독 사이의 불화설을 암시하는 말만 나와도 자지러지니까. 하지만 리지는 그저 클립보드에 적힌 무언가를 확인할 뿐이었다.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What, they couldn’t send one of the proper lads for me? They give you the short straw, princess?(뭐야, 제대로 된 놈 하나 안 보내주고? 너 독박 쓴 거야, 공주님?)"
 

그는 여자가 주춤하거나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길 기다리며 말을 던져두었다. 뭐 대단한 반응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저 저 평온함 아래에 숨겨진 무른 구석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카메라의 빨간 녹화등은 미동도 없이 그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캘런은 턱에 힘을 준 채 그 빛을 노려보다가, 아예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실제 기분보다 훨씬 더 거만한 자세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성실하게 답변해주신다면, 10분 안에 끝낼 수 있어요.”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가볍게 메모지를 넘겼다. 그러곤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이었다.

“그 반대라면…”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고요.”
 
 

팔짱을 낀 채였다. 캘런은 리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는, 무미건조하고도 느릿한 시선. 딱 10분. 지랄 맞게 굴면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녀가 제시한 시간이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실룩였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학생증이나 목에 걸고 남의 카메라나 빌려온 애송이치고는 제법 배짱이 두둑하다 싶었을 뿐.

 

캘런의 시선이 다시 한번 리지를 훑었다. 이번에는 대놓고 느긋했다. 목에 걸린 스트랩, 장비를 쥔 가냘픈 손, 그리고 전혀 쫄지 않은 듯한 그 꼿꼿한 자세까지. 원래라면 이런 거에 눈길 한 번 줄 타입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여자, 질질 짜지도 않고 사과 한 마디 없이 담백하게 제 할 말만 딱딱 내뱉는 꼴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놈들보다 이런 부류가 더 성가신 법이다.

 
"와, 씨..."
 

캘런이 몸을 뒤로 슥 기대며 중얼거렸다. 보란 듯이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꼴이 마치 이 공간의 주인이라도 된 듯 오만했다.

 
"요즘 대학에선 애들을 아주 상전으로 키우나 봐? 다들 이렇게 건방져?"
 

꼬고 있던 팔을 풀더니 양 팔꿈치를 허벅지 위에 얹었다. 몸을 앞으로 숙이자 렌즈와의 거리가 확 좁혀졌다. 렌즈 너머의 시선이 피부로 느껴졌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그 익숙하고도 짜릿한 감각. 캘런은 이런 시선을 어떻게 다루고, 또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좋아. 10분."
 

캘런의 눈동자가 카메라의 붉은 녹화등을 향했다가, 이내 그 너머를 꿰뚫어 볼 듯 고정됐다. 나중에 이 영상을 보게 될 누군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질문해 봐. 어디 한번 비위 좀 맞춰줄 테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도는 여전히 까칠했다. 답변은 짧고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지루하다는 듯 딴청을 피우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모습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편집본을 위해, 자신의 명성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톡톡 쏘는 비아냥이 섞인 짧고 강렬한 문장들, 그리고 스폰서들이 적당히 눈감아줄 수 있을 만큼만 아슬아슬하게 걸친 그 특유의 비열한 웃음. 데클런이 쓰기엔 더할 나위 없는 소스였다.

 

간간이 렌즈에서 시선을 떼고 카메라 뒤에 숨은 리지의 얼굴을 살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나? 서두르나? 아니면 아첨이라도 떨려나? 하지만 리지는 미동도 없었다. 그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촬영에 집중할 뿐이었다. 버튼을 누르는 딸깍 소리, 종이 위를 긁는 펜촉 소리, 발을 옮길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그 무심한 태도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조금 더 열심히 임하게 된다는 사실이, 캘런은 못내 짜증스러웠다.

 

압박감에 대해, 매 경기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진심이 너무 섞여버린 대답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자마자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캘런은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는 더 깊숙이 몸을 파묻으며 눈매를 매섭게 굳혔다.

 
"방금 그건 잘라."
 

낮게 깔린 목소리가 거칠게 긁혔다.

 
"앞에 했던 개소리 중에 아무거나 골라 쓰라고. 네 과제에 신세 한탄 따윈 필요 없으니까."
 

카메라 너머로 리지의 시선을 붙들었다. 다시 한번 도발이었다. 그녀가 내 말을 들을지, 아니면 끝까지 버틸지 지켜보겠다는 듯이.

 

벽시계는 어느덧 15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조명 열기와 캘런의 체온으로 좁은 방 안의 공기가 눅눅하게 달아올랐다. 캘런의 무릎이 움찔거렸지만, 그는 곧바로 다리에 힘을 주어 억눌렀다.

 
EP.02The Red Recording Light

테스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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